들어가는 말(서론) : “구원만을 위한 성령의 역사를 다룬 유일한 책!” “본서는 구체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영혼들이 구원받는 과정을 제시했다”
구원사역은 전적으로 성삼위 하나님이 주도하신다. 성령님이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신다. 지금은 종말(終末)의 끝자락 시대이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할 때(딤후 2:4)이다.
<구원을 위한 성령의 역할>(홍성철, 도서출판 세복, 2023)은 얇지만(208페이지) 묵직한 양서(良書)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세계교회)에서 “구원만을 위한 성령의 역사를 다룬 책”이 없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홍성철 목사(서울신학대 전도학 석좌교수)는 어떤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저자는 그의 앞선 책, <예수 그리스도의 피>(도서출판, 2023)와 더불어서 본서가 “구원을 위한 두 기둥” 될 것이라고 하였다(p.13).
“구원만을 위한 성령의 역사를 다룬 책이 없기 때문이었다. 평생을 복음 전파에 바친 나는 서명감에 사로잡혔고 불타올랐다. 많은 기도와 연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성령님은 나에게 <구원을 위한 성령의 역할>을 깊이 깨닫게 해주셨다. 그 제목으로 성령님이 이모저모로 역사하시는 여러 국면을 정립하게 되었다.” (저자 서문, 서평자 강조)
저자 홍성철 박사는 한국교회 최초의 전도학 박사다. 세계적 제자훈련과 전도학의 대가 로버트 콜만(Robert Coleman)은 “홍성철은 자신이 가르친 학생 중 가장 휼륭한 제자”로 공언하였다.
<주님의 전도계획> 등 30여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한국교회에 소개하였다. 또한 영문판 6권을 포함 지금까지 30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그는 태국의 선교사, 3교회 개척한 목회자, 서울신학대학교와 미국 에즈베리신학교 전도학 석좌교수 등으로 사역하였다.
전체 6 PART; 세상을 위하여/불신자를 위하여/구원을 위하여/구원의 확신을 위하여/새로운 신분을 위하여/승리를 위하여. 구원을 위해서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고 일하시는지를 명쾌한 글쓰기로 성령님의 신비한 역사를 기술했다. 참으로 놀랍고 기기묘묘(奇奇妙妙)하다.
서평자는 불신자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구원의 확신과 승리를 위하여, 성령님의 일하심 부분을 중심으로 간단히(?) 서평을 할 것이다.
1. 성령님은 ‘온 세상을 위하여’ 어떻게 일하시는가?
어떤 인생도 맨정신으로 ‘예수쟁이’(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성령의 임재와 능력이 없이는 어떤 사람도 변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밀이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 아니다. ‘신령한 것’ 곧 ‘영적인 것’에 눈이 열려야 알 수 있는 ‘공개된 비밀’이다.
우리는 ‘영적인 것(신령한 것)’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 한다. (고전 10:1-4)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고전 10:1) 바울 사도는 부정에 부정의 표현(강력한 강조)으로 고린도 교회에 교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사항을 언급한다. 그것은 ‘신령한 음식/음료/반석’에 대한 것이다. 곧, ‘영적인 것’이며 성령의 역사와 은사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예수쟁이들(목사, 선교사들 중에도) 중에 상당수가 성령의 역사와 영적 은사에 ‘영적 소경’에 가까운 자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오호 통재라!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 우상을 섬기던 자가 돌이켜 예수 믿는 자가 된 것은 맨정신으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기”(고전 12:3)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를 주시라”라 할 때 “주”는 구약성경의 ‘여호와’ 인줄 안다면 이런 고백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왜 그런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과 내주로 변화 받은(구원받은) 자만이 고백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구원사역은 성부·성자·성령 삼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성경의 놀라운 비밀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행 2:33) … 이 사도행전 2:33에 ‘삼위일체론’이 다 들어있다. 우리는 구원을 너무 쉽게 말하고 하물며 가볍게 여기는 듯하다.
성부(聖父)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성자(聖子) 예수님을 “높이시매”는 무궁무진(無窮無盡)한 뜻을 함축한다.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이 풀린다. 저자는 ‘높이시매’를 3가지로 풀었다(p.31).
예수님이 인간이 되셨다. 죽음 후에 몸은 무덤에 묻히고, 영은 옥으로 내려갔다(벧전 3:19). 그리고 부활·승천하셨다. 여기서 ‘오른손’은 하나님의 재창조의 능력을 가르킨다.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얼마 전에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본 당시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에게 설교한다.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아 내려 주셨다고 선포했다. 이것이 복음적 설교다. 설교는 걸거나 짧거나 기록된 말씀을 정확히 전해야 한다.
“다른 보혜사”, 성령님은 누구신가(요 14:16) “성자 하나님과 같은 부류” 예수님의 사역기간은 고작 3년여! 성령님의 구원사역 기간은 2,000년!
‘다른 보혜사’ 곧 성령 하나님이 성자의 대를 이어 역사하시지 않았다면 구원은 성립할 수 없었다. 사실상 구원사역에서 성령님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성부와 성자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님에 대해, ‘성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생을 성삼위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관계 회복에 나서신 것이다. 이것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의 줄거리다. 오순절 날에 강림하신 성령님은 지금도 예수 안 믿는 불신자들에게 예수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도록 도우신다.
“또 한편 성령은 그 기간 중 그리스도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과 동행동사(同行同事)하신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그리스도인들로 교회를 일구도록 도우신다. 그리고 세상 가운데 자리한 교회로 세상의 등대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게 하신다. (중략) 이렇게 동분서주하면서 사역하시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을 데리고 이 세상을 떠나신다” (p.35)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온다. 크리스마스는 성자 하나님,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 33년 인간 예수님. 마지막 순간까지 고난의 연속 끝에 십자가 죽으심과 그리고 부활하심. 만일 ‘다른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의 대를 잇지 않으셨다면, 주님의 모든 고난과 십자가 죽음은 헛것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큰 나무 십자가 메고 Luton 번화가 거리 전도를 하였다. “(십자가를) 쳐다본즉 살더라”(민 21:9) 말씀이 응하는 시간되길 기도를 올리며…
3. 회개와 믿음; ‘회개’는 하나님께 완전히 돌이키는 행위/’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 회개와 믿음은 ‘동전의 양면’이지만, 절대로 ‘자동 연결’이 아니다.
죄인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가 ‘먼저 회개 후 믿음’이다. 회개는 180도 돌아서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회개와 믿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 덩어리다. 회개가 있으면 믿음이 따라야 하고, 믿음은 회개를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결단코 자동-연결이 아니다.
3.1. 회개: 아무나 다 회개하지 않는다.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성령께서 죄인들을 끌어당기지 않으시면 아무도 회개할 수 없으며, 따라서 구원받을 수 없다. 그 원인은 아담과 하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이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따서 먹는 순간 하나님과 분리되었는데,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이다.” (pp.62~63)
모든 인생은 완전 타락했다. 영적으로 죽었다. 자기의 결단과 노력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맨정신으로 예수를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께서 불신자들에게 보내셨다. 성령께서 친히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책망’(요 16:8)하시며 그들을 주님께 끌어당기신다. 더 많은 경우 그리스도인의 ‘삶과 증언’을 통해 일하신다.
죄인을 그리스도에게 강력하게 끌어당김의 최고의 수단: 신자의 “삶이 따른 말씀”.
죄인이 회개에 이르게 끌어당기는 도구들: 그리스도인의 간증. 친구·친족의 죽음, 질병 등이다. 가장 강력한 도구는 역시 하나님의 말씀. “말씀은 그들을 끌어당기다가 마침내 회개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언급한 말씀을 보자: ‘…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딤후 2:24-25). 삶이 따르는 말씀은 죄인들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으며, 마침내 그들로 회개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p.64)
3.2. ‘구원의 믿음’: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롬 10:1)
구원받는 것은 겉으로 보면 매우 쉽고 간단한 것 같다. ‘마음으로 믿어’가 중요하다. 회개한 자가 마음으로 믿을 수 있다. 죄인인 인간은 그의 악한 길에서 돌이킨 후 믿게 된다. 그래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딤전 2:5-6, 행20:21).
회개는 하나님께 돌이키는 행위를 가리키고, 믿음은 하나님과 죄인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자신을 비워야 한다. 자기를 비우기 위해서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할 때 비로소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다. 믿음의 대상,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함께하시며 그 마음에 빛을 던져 주신다.
“그 빛은 죄인으로 깨우치고, 책망하고, 마침내 그를 그리스도 예수께로 인도한다. 그런 이유로 믿음의 확실한 근거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역사는 성령의 몫이다” (p.76)
4. “아빠 아버지”; “왜 아빠나 아버지라고만 불러도 되는데, 두 번이나 반복했는가?”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롬 8:15) “양자의 영”이 갖는 특권을 아는가?
회개하여 구원받은 자를 우리는 중생(重生)한 자를 신자(信者)/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딸, 곧 양자(養子)가 되었다. 성령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신자 안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하나님께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이 성탄절에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왜 오셨는가?
“…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 4:4-5)
아들의 명분을 얻는 것” 특권을 아는가?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양자로 입양되었다(롬 4:4). 유대인의 놀라운 특권이다. 하나님의 자녀만 누리는 영광/언약/율법/예배/약속 등을 은혜로 받았다. 신자/예수쟁이도 양자가 되었다. 바울 사도는 신자는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롬 8:15)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선언하였다. 하늘의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우리가 거듭날 때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내주하시는데, 그 성령이 ‘양자의 영’이라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을 때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데, 그 은혜를 중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중생의 은혜를 경험할 때, 그 영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pp.106~107)
서평자는 어린 시절 엄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솔직히 아버지가 무서웠다. 너무나 가난한 농부로서 7가족을 부양해야 하셨던 아버지!. (2남 2녀의) 장남인 내게 거는 기대감이 컸었다. 그러다 만 20세에 복음을 듣고 예수쟁이가 되었다. 내게도 든든한 백이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때부터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근면 성실하셨지만 늘 가난했던 나의 아버지! 하늘의 아빠, 아버지는 얼마나 부요하고 멋진 아버지인지를 날마다 경험하게 되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우리, 담대하게 뻔뻔하게 “아빠, 아버지” 부르짖으라!
이 땅의 모든 예수쟁이는 얼마나 든든한 백을 가진 자인가? 어린 시절에 시골 마을엔 양자를 삼은 두어 가정을 보았다. 신분이 완전히 달랐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특권(요 1:12)은 어마어마하다. “아빠 아버지”라고 당당히 부르는 특권이다. 법적으로 양자가 되었기에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으로 인해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할렐루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6) 그러므로 묵상만 하지 말고, 부르짖으라(렘 33:3)!!
“그런데 왜 아빠나 아버지라고만 불러도 되는데, 두 번이나 반복했는가? 물론 진한 애정 표현의 표현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있다. 아빠는 유대인들에게 익숙하나 헬라어로 된 아버지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의 용어다. 그러므로 그렇게 반복된 표현에서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아버지라는 것도 함축하고, 하나님이 이중적으로 아버지이심을 함축했을 것이다” (P.109, 서평자 강조, “아빠 아버지” 호칭이 너무 좋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창조의 아버지’시다. 아울러 지구촌의 모든 신자들의 ‘구속의 아버지’시다. 할렐루야! 그러나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 곧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다. 소수의 메시아닉 유대인들만 아빠, 아버지로 부른다.
나가는 말(결론) : “’구원을 위한 성령의 역할’ 참으로 놀랍고 굉장하다!” (홍성철)
“일을 행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겔 33:2-3)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구원받는 역사는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이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생은 성삼위 하나님과 깨어진 단절된 관계,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성부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 성자 예수님은 십자가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새로운 사역에 들어가셨다. 기도의 사역이시다.
예수님의 사역은 더 중요한 역사를 일구셨는데 곧 성령을 하나님께 받아서 세상에 보내셨다.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엄청난 중요한 역사를 시작하셨다. 성령의 책망을 받아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게 두 가지를 촉구하신다. 회개와 믿음이다. 전적인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님의 도움(역사)없이 구원받을 영혼은 1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적으로 성령님께 의탁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영혼 전도의 첩경은 명백하다. ‘성령충만함’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유일무이(唯一無二) 중보자! 구원의 그 이름 오직 예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가 되신 목적은 모든 사람이 그분의 팔을 잡으라는 것(딤전 2:4) 그런데 여기서 또 실수하며 간과(看過)한다. 우리는 또 마음이 너무 성급하다. ‘오직 예수’만 외치며 구호제창만 하려 한다. 거리에 나가서 외치기만 한다. 성령님의 역할은 뒷전이다.
어떤 인생도, 어떤 죄인도, 양팔 벌리고 계시는(나무 십자가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을 수 없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예수님을 붙잡을 수 없다! 펄펄 넘치는 영성이 비밀이다.
예수 믿고 거듭나서 신자/예수쟁이가 되기는 한 순간의 역사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 신자의 삶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성령은 구원의 확신, 내적 증언으로 예수가 나 개인의 구주라는 것을 확신하며 불신자들을 보면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전도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성령님의 증언 때문이다. 아멘.
(서평 후기: 홍성철 목사님은 서평자의 영적 아버지, 멘토이시다. 1971년 죠이클럽(후에 죠이선교회)에서 첫 만남 이후 지금까지(52년간) 시공간을 초월하여 가장 가까이 계시며 사랑을 퍼부어 주신다. ‘완전한 학자 겸 제사장’, 홍 목사님의 너털웃음은 세계적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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