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부대가 파병되기 전에 현지 정찰을 하면서 군 수송기에서 내려다 본 모습은 매스컴에서 보도된 것보다 더욱 참혹하게 다가왔다.
섬 전체의 코코넛 나무들은 오른쪽으로 쓰러져 있고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은 시커멓게 고여 있었다. 해안가의 일부 시멘트 건물들은 골조만 남아 있고 대다수의 목조건물은 흔적만 보였으며 내륙의 건물들도 대부분 지붕이 날아간 상태였다.
태풍이 지나간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가족의 시신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휑한 눈빛으로 공포에 질려있는 어린이들을 보니 가슴이 미어져 눈물이 핑 돌았으며‘우리가 파병을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고 삶에 희망을 줄까?’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였다.
더욱이 현지에 많은 UN의 구호단체와 다른 나라의 군대들이 활동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의 파병목적을 달성하고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어떻게 접근하고 구별되게 행동하여야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컸다.
"첫 인상이 마지막 인상이다."
우리 정부와 필리핀과의 파병협정서에‘한국군의 파병 기간을 6개월로 하되, 양국간 상호동의가 있는 경우 6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였으므로 우리가 임무수행을 잘 못하면 6개월 만에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파병부대장으로서 초기에 현지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우호적인 반응을 얻어야 했다. 당시 필리핀에 재해복구지원부대로 한국군이 파병하는 것에 대해 현지 주민과 언론은 겉으로 환영 의사를 표명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일부 부정적인 요인이 있었다.
첫째, 필리핀에서 1992년 미군이 철수한 이후 외국 군대가 들어오는 것은 한국군이 처음이었다. 따라서 필리핀 정부가 한국에 요청한 파병이지만 주민들 마음속에는 기대감과 더불어 스페인, 미국,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역사적 배경에 의한 외국군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먼저 상대방을 감동시켜라”는 말이 있듯이 주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전략의 중점을 주민 감동'에 두고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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