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사람의 힘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세 가지의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인간의 과거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과거는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고, 어떻게 말하면 지나간 것인데 쉽게 말할지 모르지만 과거 때문에 사람들은 힘들어하고 고통하고 아파하고 또 묶여서 노예생활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와 아픔 때문에 현재도 슬퍼하며 미래도 절망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둘째로, 인간이 겪고 있는 현재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뭘 먹고 살 것인가 앞으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짐은 쉽고 가볍다”라고 하셨습니다.
셋째로. 미래에 관한 문제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 천국도 있고 지옥이 있다.”
그러면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도 그 답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우리를 가리켜서 왕 같은 제사장이라 했고 사도 요한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과거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다.’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다면 우리는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누가 세상을 이기겠느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고 선포했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을 따라서 부활의 소망을 가지며,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의와 희락과 영원한 아버지 집을 우리에게 약속해주심을 믿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뿐만 아니라,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 복음을 주셨습니다. 이 복음이 사실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복음을 믿고, 구원받고, 해방받고, 행복해질 뿐만 아니라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때로는 고난도 받고, 핍박도 받고, 때로는 죽음도 당했지만 이 복음이 지금까지 전해온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바울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유다 지파와 같이, 그래도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순수한 혈통을 지닌 지파가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요 공회의원이요, 당시에 최고의 공부를 한 가말리엘 문하의 사람입니다. 그는 돈도 있고, 세상을 다 가졌지만 그리스도에게 비교하면 “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노라” 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을 나왔습니다. 직장도 좋고, 돈도 있고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고 가문도 좋아요. 권세도 가졌습니다. 그가 살만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 비교하면 이것은 오물과 같다, 배설물과 같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 이 복음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누가 우리를 과거의 모든 죄와 실패와 좌절과 상처 속에서 건질 자가 있겠으며, 누가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승리할 자가 있겠으며, 미래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수천년 동안 지금까지 복음이 증거된 줄로 믿습니다.
바울의 진정한 기쁨은 내가 얼마나 잘 사느냐보다, 복음이 증거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소원은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에게서 많은 제자가 일어나게, 증거하기 위해서 최고의 도시인 로마를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에 가기 전에 이들에게 먼저 준비시키고 복음을 전하기 위한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8절,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사도 바울의 기쁨은 자기 육신에, 자기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다면 그것 때문에 기쁘고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너무 감사한 것은 너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이고, 너희들의 믿음을 통해서 그 믿음이 온 땅에 전파된 것이니라, 그랬습니다.
당시에 로마는 최고의 도시여서 많은 인재들이 모이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노예도 큰 도시로 몰렸습니다. 거기에서 복음을 전했더니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니 ‘너희들이 믿는 그 예수를 믿는 믿음이 온 땅에 전파되는 거 보니까 내가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 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뻐할 일이 많고 감사할 일이 많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므로 감사가 있는 은혜와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감사가 늘 있는 것은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만의 특징입니다. 복음을 아는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9절,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여기에 보니,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심령(프뉴마, 영혼 깊은 곳에서 자기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깁니까? 예배 한 번 드리는 걸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합니까? 내가 봉사하고, 헌금을 드리고, 찬양하고, 조금 내가 수고한다고 하나님을 다 섬겼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경외하는 마음으로-섬기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경외하는 마음으로-섬기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예물을 드리고, 말씀을 지켜나가고, 사랑하고 복음 전하는 전도자에게 주님께서 함께 하는 줄로 믿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내 증언이 되시거니와 한 번도 보지 못한 로마교회 성도들을 위해 항상 기도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말하기를 “기도를 쉬는 죄를 짓지 않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기도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뿐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북한 땅을 위해서, 선교지역을 위해서, 약한 자들을 위해서,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기도의 힘을 모아야 됩니다. 중보기도회, 심야기도회 동참하시고, 새벽기도 하시고, 셀 공동체 위해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바쁠수록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일하기보다 기도에 힘쓴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번 주에 새벽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기도에 열심 있지 못한 것을 용서해주세요. 교회를 위해서 성도를 위해서 기도의 특권을 주셨는데 기도를 다하지 못한 것을 용서해주세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아파하면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더 많이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가지게 됐습니다.
사도 바울이 알지도 못한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면 우리는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게 마땅하고,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마땅하고, 선교사를 위해서 파송만 해놓고, 헌금만 조금 해놓고 만족하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고, 한국교회를 위해 민족을 위해 세계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줄로 믿습니다.
10절,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바울은 로마에 가기 약 2년 전에 편지를 쓰면서 “로마에 가기를 구하는데 하나님께 좋은 길 얻기를 구한다” 그랬어요.
1년 후에 하나님이 바울의 기도를 응답하셔서 사도행전 27장 1절에 보면 로마에 가게 됩니다. 바울은 육신적으로 뚱뚱하고 아름답게 로마의 교회에 간 게 아니라 죄인의 몸으로 갑니다. 악한 죄가 아니라 복음 전파한다는 죄목입니다. 그래서 자유의 몸도 아닙니다. 가는 길에 많은 죽음의 위험과 무시당함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슨 좋은 길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과 바울에게는 가장 좋은 길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갈 때 육신적인 기준으로 보는 것을 바꾸셔야 합니다. 육신적인 편안함도 좋은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받고 죄인의 모습으로 갔지만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기록한 복을 받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많은 일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볼 때 바울이 가장 기뻐한 좋은 길이 되었습니다.
11절,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사도 바울이 왜 그렇게 로마에 가기를 간절히 소원했냐면 ‘어떤 은사를 나누어’라고 했습니다. 원래의 뜻은 새로운 은사 은혜를 나누어 주기를 원해서 라는 뜻입니다. 나누어 준다는 말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눈다는 게 아니라 서로 나눈다는 뜻으로 이해되어 집니다.
12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성도의 은혜는 한 사람만 받고 계속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은혜를 받고 나누는 것입니다. 어떤 신령한 은혜를 말하면 특별한 새로운 은혜입니다. 무슨 새로운 은혜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육신적인 것은 새로운 게 별로 없습니다. 다 옛것이 새로 오는 거지요. 그런데 신령한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서 날마다 새롭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에베소교회에게 칭찬하고 책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너희 첫사랑을 잃어버렸다” 첫사랑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찾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버리겠다, 사람은 첫사랑이 한 번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일 매일 새로운 은혜와 첫사랑이십니다.
바울이 가서 복음 전함을 통해서 그들이 신령한 은혜를 새롭게 받아가는 걸 새로운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그걸 나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그들에게 전해줌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새로운 은혜를 나누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셀 공동체입니다. 셀 공동체는 한 사람의 은혜뿐만 아니라 서로의 은혜를 나누되 풍성히 나누고, 더욱 우리가 성숙되어 가고, 견고하게 서가는 것이십니다.
이렇게 은혜를 통해서 너희가 견고하게 서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시고, 받은 그 은혜에 감사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지켜나가고 어떠한 어려움과 환란과 환경이 온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지켜나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2-13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예수님 안에서의 열매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성결의 열매, 예수님을 닮아가는 열매입니다. 둘째 열매는 그 결과로 전도의 열매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열매가 많아야 하나님을 더욱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니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열매를 많이 맺는 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경외하며 순종해나갈 때 주님을 닮는 성결의 열매가 있고 성령의 열매가 맺힘을 믿습니다. 그 결과로 또 다른 영혼이 구원 받고 돌아오는 데 쓰임 받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열매이십니다.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길이 막힌 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억지로는 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기도하고, 길이 열리도록 기다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14절,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내가 다 빚진 자라.
빚을 졌다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갚지 않으면 화가 임한다, 또 하나는 빚 갚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다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나를 위해서 기도해준 사람이 있었고, 복음 전해준 사람이 있었고, 선한 손길 베푼 사람이 있었고, 수고한 사람이 있었고, 그런 수고와 기도와 헌신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둘째로 우리나라는 복음에 빚진 나라입니다.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초창기에 많은 선교사님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그 선교사님들을 살펴보니까 못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 그 나라에서 일류대학을 나온 이십대 젊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한국에 올 때, 식사도 맞지 않지요. 화장실도, 침대도 맞지 않지요. 샤워도 할 수 없지요. 맞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토양 병에 죽는 사람도 있고, 매에 맞기도 하고, 돌에도 맞기도 하고, 업신여김을 받기도 하고 병들어 죽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이 민족, 캄캄한 이 땅에 복음을 증거해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예수 믿고 복 받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복음에 빚진 자이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해야 되겠고,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복음을 전해야 되겠고, 선한 손길을 베풀고 헌신을 해야 마땅한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를 받아놓고, 은혜를 내가 누리기만 하고 은혜를 내 것만 가지고 나만 안일하게 행복하게 산다고 하면, 복음에 빚진 자세는 아닙니다. 빚진 사람은 갚을 마음이 있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로 개인적으로 셀 공동체를 통해서 이 지역을 통해서 나라를 위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 마땅할 뿐만 아니라, 복음을 받은 나라로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헌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하고 마음을 먹고 정말 복음 전하는 일에, 선교하는 일에, 우리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함께하고 동참하는 그런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빚진 자가 빚을 갚지 않고 살면 되겠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복음에 빚진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데 투표하고 핍박자요 훼방자요 예수 믿는 사람을 때리고 가두고, 이 일을 위해서 초대교회가 기도했지 않겠습니까.
이래서 복음 전하는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 믿고 돌아보니까 나는 복음에 빚진 자요. 나는 훼방자요. 핍박자인 나를 위해서 주님은 역사하셨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했고 수고했고, 원수를 대신 갚지 않았습니다. 일평생 복음에 빚진 자로 사도 바울은 살았습니다.
15절,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복음에 빚진 자와 같이. 이방인입니다. 대부분 로마에 있는 사람들은 유대인도 있지만 이방인이 많이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의 뜨거운 열정이 있어서 금방이라도 배를 타고 로마에 뛰어가서 복음 전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 문 여시기 전까지는 가지 않는 전도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뜨거운 열정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문 여신 곳만 가는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인간적 열심을 가지고 우격다짐으로 내 힘을 가지고 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복음을 전할 때 기다려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참아야 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해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내 성품과 내 열심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그들이 때로는 부담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지혜롭게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는 내가 가기 싫더라도 주님이 가라고 하면 가는 것이 전도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복음 전하기 위해. 복음에 빚진 자 같이 전하기를 원한다.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강조입니다. ‘나는 복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바울은 육신의 자랑거리가 많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게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복음이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과거의 모든 죄에서 해방하는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십니다. 수십 년, 수천 년 죄지은 우리에게도 믿는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굉장합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족속 땅 끝까지 복음의 능력은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은 저주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능력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고, 죄에서 해방하는 것이고, 지옥 갈 사람을 건져낸 것이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천국을 보장받는 우리가 힘으로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되는 은혜의 복음입니다.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그 말씀. 다른 길은 없습니다. 믿는다는 말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고, 다윗도, 모세도, 바울같은 악한 사람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고, 우리 같은 죄인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고. 이것이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과거에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는 이 은혜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열매를 맺으면서 복음을 전하면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십니다. 이런 교회와 이런 성도가 되어서 저와 여러분이 복음에 빚진 자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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