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맡겨진 지적장애인들의 가슴에 복음을 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역입니다”
지난 3월 2일부터 영남신학대학교 신대원 3학년에 재입학(복학)하여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신대원 수업을 받으며 안동에 소재한 장애인 시설에서 사역을 병행하려는 황석웅 전도사(55).
“다시 신대원 공부를 해보니까 어때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너무 좋아요”라며 함박웃음을 짓는 황 전도사는 “근데 참 희한하게 작년 말부터 겨울철에 얼음 녹듯이 좋은 일들이 하나하나씩 생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황 전도사는 “지난 연말에 12년 걸려 신구약 성경 전체 필사를 완료했다”며 “시간 있을 때마다 그리고 마음이 좀 그럴 때마다 성경 필사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했는데, 그게 시간이 지나니까 신약성경을 다 쓰게 되었고, 그래서 구약성경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필사를 계속하게 되었다. ‘신대원 복학하기 전까지 마무리 지어야지’ 생각했는데 작년 12월 말에 성경 필사를 마무리했다”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신대원 복학과 관련한 얘길 꺼냈다.
“제가 학교에 다시 복학하려고 했더니 학교 측에서 ‘학칙상 자퇴(휴학)한 지 5년이 지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2월에 5년이 지나도 재입학할 수 있도록 학칙을 바꾸게 되어 복학하게 됐다. 하나님께서 신대원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제게 기회를 주신 것 같다”
◆ 황석웅 전도사와 박승탁 교수의 관계 그리고 장애인 사역
황 전도사의 지나온 삶을 얘기하자면 지난해 2월에 퇴직한 영남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승탁 교수와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박 교수와 20여 년이 넘는, 적지 않은 세월을 함께 부대끼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였던 그가 2021년 7월에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박승탁 교수의 논문을 대필했을 뿐 아니라 논문대행업체에 맡겨 논문을 대행하여 논문을 썼다”고 밝혀 교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황 전도사는 이때 “박 교수와 20년 이상 관계를 맺어온 사이였기에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밝히기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거짓을 감출 수 없다는 신앙 양심 때문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었다.
박 교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에 대해 황 전도사는 “대학에서 산업복지를 전공하고 직장을 알아보던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외된 장애인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하여 1994년 5월에 안동애명복지촌의 원장이었던 박승탁 교수와 사회재활 교사로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설명했었다. 그리고 장애인 사역에 몸을 담게 되었다고 한다.
황 전도사는 “1994년 5월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관계를 유지하면서 때로는 가족보다 더 깊은 관계로 1994년부터 2001년 2월까지는 원장과 직원으로서 교제하였고, 2001년 3월 박승탁 교수가 영남신학대학교 교수로 부임하고 겸직으로 예사랑교회 전도사일 때부터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로, 2013년 본인이 신대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여 2015년부터는 예사랑교회에 지도목사와 전도사 관계로 지내왔었다”고 첨언했다.
그런데 “박승탁 교수가 1996년 대구대학교 재활과학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을 쓸 때부터 조금씩 도와주었고, 이후 2001년 대구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부터 교정 및 문장 정리 등을 해주면서 논문을 써 주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이렇게 시작하다 보니 조금씩 더 큰 부탁을 하여도 거절할 수 없게 되었고, 그 당시는 연구윤리에 대해 정확한 것이 없다 보니 거기에 대해 윤리적인 부분에 대해서 무지한 부분도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박승탁 교수가 영남신학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박 교수의 논문을 써 주게 되었다.”며 “처음에는 한편만 쓰면 끝날 줄 알았는데 계속 요구를 하니 거절할 방법도 없었고, 직장 상사가 박승탁 교수의 배우자였기 때문에 거절해야 함에도 거절하지 못하고 한 편만 한 편만 한 것이 영남신학대학교 학회지인 <신학과 목회> 논문을 2013년까지는 1년에 1편 정도 이상 써주어 18편 이상을 대필해 주었고, 2015년부터는 대행업체에 7건을 맡겨 논문을 대행하여 논문을 썼다”고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논문을 대행업체에 맡겨 비용이 발생하였는데도 (박승탁 교수가) 그 비용을 다 해결해 주지 않아 그 비용을 자비로 지불하기도 하였고, 아직 잔금이 남아있는 상태다.”며 “게다가 논문을 쓰고 학술지에 게재가 되었는데도 그 게재료까지 저에게 전가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황 전도사는 “논문대필의 시작점은 저의 연약함과 아닌 것을 아니라고 강하게 답하지 못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박승탁 교수가 당연하다는 듯이 저에게 논문대필을 시켰고, 저는 처음에 직장 상사와 부하로, 교회에서는 목회자와 성도로 2015년 이후부터는 지도목사와 교육전도사라는 관계가 지속되고, 무엇보다 저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둔 가장이고 박승탁 교수의 배우자가 내가 다니는 직장의 최상급자인 시설장으로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질질 끌려 왔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게 되었다.”며 “혹자는 ‘조교가 하는 일을 맡겼겠지’, ‘써줄 감이 되지 않는다’, ‘그냥 쓴 글을 컴퓨터에 옮겨주는 일만 했을 것이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힘이 없고 철저히 약자인 사람이 모든 것을 덮어 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잘못된 것은 시기가 늦었더라도 밝히는 것이 모두에게 바람직하며 옳은 일이리가고 여겨졌기에 양심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고 밝혔다.
또한 “연구업적이 부족하여 책은 더 많은 실적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책을 두 편을 써 주었고, 한 권은 제가 박사학위를 준비하면서 모아놓았던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써 주었고, 한 권은 박승탁 교수의 박사학위 중 이론적 배경과 그동안 강의자료로 제가 써 주었던 것을 정리하여 써 준 것이다”며 “지금까지 논문을 대필한 것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박승탁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 의혹 제보 및 조사 요청을 한 것은 지속적으로 논문을 써 달라고 하여 논문을 쓸 수도 없고, 그것이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는 내 마음속의 신앙의 양심이 나를 갈등하게 하여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앞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나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일 수밖에 없기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더이상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원하며 지금도 묵묵히 연구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자기가 하지도 않으면서 연구업적으로 교수직을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였기에 박 교수의 논문대필 등에 관해 폭로하게 된 것”이라고 심경을 피력했다.
동시에 “영남신학대학 학생들에게 참으로 죄송하다”며 “논문대필 문제로 인해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들일 것이다. 보다 나은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할 학생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가식과 순간순간의 면피로 인해 피해를 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죄송하다. 남의 티눈을 보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보아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였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지 못한 저의 선택이 박승탁 교수의 연구 업적물을 교수생활하는 동안 대필해주고, 그것도 모자라 논문대행업체에 맡기며 교수 생명을 연장하도록 만든 장본인이기에 더욱더 죄스러우며,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정직하며 신실하며 거룩하여야 할 선지 동산에서 도저히 해서는 안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준 것에 대해 참담함과 통회함으로 회개하며 늦었지만 진실의 횃불이 밝게 타오르기만을 기대한다”고 참회의 고백을 했다.
◆ 영남신학대, “박승탁 교수 논문표절과 대필 및 대납 모두 사실”
이 사건에 대해 영남신학대학교(총장 권용근 교수)는 지난해 1월, “사회복지학과 박승탁 교수의 논문표절과 논문대필 및 대납이 모두 사실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박 교수에 대한 학교 차원의 징계가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그러나 박 교수가 지난해 2월 말로 은퇴했기 때문에 실제적인 징계처분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사건이 불거진 후 박 교수 측에서 황 전도사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꼬투리를 잡아 경찰에 고소했지만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황 전도사는 아내의 권면에 힘입어 박 교수 때문에 중단되었던 신대원 공부를 8년 만에 다시 하게 되었다.
장애인 사역에 대해 황 전도사는 “예전과 분위기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며 “2007년도에 장애인 복지 차별법이 만들어지면서 분기마다 인권강사들이 와서 장애인들을 상담하기 때문에 자칫 교사에게 불똥이 튈 수 있어서 교사들이 몸을 사리게 된다”고 말했다.
“어떤 때는 ‘내가 이 사역을 계속해야 되나’ 그런 생각도 들겠다”는 기자의 질문에 황 전도사는 “다행히 저는 ‘그만둬야지’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만약에 이게 나한테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으면 지난번 박 교수 사건 때 나가떨어졌을 거다. 내게 주어진 이 사역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몸담고 있는 것이다”
“사명감이라고까지는 말 못하겠지만 어떤 일이든지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게 제 삶의 모토다. 그리고 저에게 맡겨진 장애인들의 가슴에 복음을 심는 것이 제가 감당해야할 가장 중요한 사역이다”
황석웅 전도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분은 정말 진실된 사람이구나. 참 예수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선가 그의 사역과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봄이왔다는 소식을 알리는 활짝핀 노란 개나리와 같이 황석웅 전도사와 그의 가족 얼굴에 웃음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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