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하나님의 상담에 의존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의 상담이 아닌 다른 상담이 나타났다. (창세기 3:1-6)
뱀이 나타나 “하나님이 정말 모든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결국은 선악과에 대하여,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지만, 절대 죽지 않는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럴듯한 이유를 제시했다. 즉, 그것을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는데, 그게 싫어서 하나님이 못 따먹게 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하와는 그 말을 믿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다.
인간의 타락은 세상에 많은 상담자가 있음을 보여주게 되는 사건이다. 그들은 각기 인생을 해석하고 피상담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가르쳐 준다. 인간은 TV. 인터넷, 잡지, 정치인, 친구, 친척, 학교, 교회 등에 의해 상담을 받고, 또 서로 상담하는 등, 많은 음성을 듣고 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음성은 단순한 것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과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다. 다른 상담자는 없었다.
그러나 3장 이후에는, 특히 현대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있는 세계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그들은 인생에 있어서 같은 상황과 조건을 다룬다. 그러나 그들의 해석은 극적으로 다르다. 우리의 삶은 어떤 해석을 듣는가에 따라 다르게 설정된다.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범죄한 인간은 영적으로 맹인이 되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시각은 마음의 눈이다. 육체적 시각의 상실은 운전도 못하고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영적 맹인은 더 심각한 문제를 갖게 된다. 삶을 인도해 주는 것은 마음의 눈이기 때문이다. 육체적 맹인은 자신이 맹인이라는 것을 알고 거기에 대처하지만, 영적 맹인은 자신이 맹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우리는 영적 맹인 됨을 인하여 고통당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으나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한다. 누가 그런 점을 지적하면 우리는 몹시 놀란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도움이 필요하다.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스스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보는 것은 왜곡된 거울을 통해 보는 것과 같다. 스스로는 ‘왜곡된 자아상’만 갖는다. ‘나를 사랑하는 타인’이 보는 시각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믿는 사람이지만 죄가 우리 안에 살고 있기에 우리를 맹인 되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거울인 성경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각자 스스로 이러한 노력을 할 수 있지만 성경적 상담자가 말씀을 통하여 도와주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 <저작권자 ⓒ 뉴스와종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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