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서론): 일일 일책(日日 一 冊)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비결>
“성경만 읽으면 되지 왜 다른 책들을 읽어야 할까?” “성경 1권으로 충분하지 않는가?”
“어떻게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당신은 독서 ‘광인(光人)’인가? ‘꽝인’인가?” “무엇을 읽고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날마다 새롭게 사는 비결은 없을까?”
열혈독서, 크리스천의 일일 일책(日日 一冊)(박종순, 나침반, 2021) 부제: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비결> 무엇을 읽고/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책을 읽을 때면 예수의 피가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저자, 박종순 목사는 미국 이민교회 건강한 목회자다.
Fuller 신학교에서 교회성장학을 전공했다. 그는 목회자/신학자/설교자이며, 글 쓰는 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5년 전 ‘일일 일책’을 결심하면서 매일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고 묵상하는 독서를 통해 상식이 일상이 되는 건강한 목회를 주장하는 젊은 목사다.
저자는 20세 펄펄 끓는 청년의 때에 예수님을 만나 ‘열혈 예수 청년’이고 싶었다. 그래서 패스워드도 ‘392766bible!’다.
책 읽기도 열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열혈 독서’다.
“성경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성경과 함께 책을 읽어야 함을 어렴풋이 느끼던 어느 날 새로운 독서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한 권의 책 읽기 입니다. 누가 하루에 한 권씩 읽으라고 권면하거나 숙제를 준 것은 아닙니다. 그냥 ‘하루에 한 권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었습니다. ‘일생에 5천 권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은퇴할 때까지 한 권씩 읽으며 대략 가능할 것 같아 정한 것이 바로 일일 일 책!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자’ 입니다” (p.8, 저자의 ‘막연한 생각’의 옹골찬 결단이 넘 귀하다)
본서는 일생 5천 권 독서에 도전하며, 5년간 ‘일일 일책’하며 경험한 삶을 진솔하게 나누고 있다.
전체 4부: 제1부(열): 독서에는 반드시 자극이 필요한다. 제2부(혈): 하루 한 권의 책 읽기. 제3부(독): 무엇을 읽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 제4부(서): 읽으면 일어나는 변화.
서평자는 저자의 5년간 독서 경험의 지혜를 중심으로 간단히 서평 할 것이다.
1. 독서에는 반드시 자극이 필요하다: “‘光人’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빛나는 사람’(光人)은 선구자이다. 광인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다. 누가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먼저 시작한 자들이다. 매일매일 시작을 반복한 사람들이다. 우리 주위에 광인들이 곳곳에서 빤짝인다.
그들은 자신을 “따르라”. “본받으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서 빤짝이며 살아간다. 이 서평을 읽는 당신도 광인(光人)이 될 수 있다.
“책은 그 자체로 영향력이 있습니다. 책을 쓴 저자도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도 영향력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향력을 정의할 때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향력은 선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영향력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한 얼굴과 악한 얼굴입니다. 광인(光人)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p. 20, 이 서평을 읽는 당신도 이미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이다)
저자가 만난 光人 두 사람: 이동원 목사/강준민 목사
이동원 목사를 통해 독서의 방법과 일상의 삶 그리고 설교와 독서의 방법을 배웠다. 이동원 목사의 탁월한 설교의 비밀은 ‘독서에서 시작하여 독서에서 끝을 맺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뿌리 깊은 영성>의 저자 강준민 목사와의 만남을 통해서 ‘光人은 光人들과의 생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서로 돕고 협력하며 공유하며 자극하며 위로하며 살아가는 선순환의 멋진 생태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광인(光人)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보와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강준민 목사님을 통해서 그것이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광인(光人)들이 공유하고 있는 정보의 바다는 책에서부터 시작되는 삶이었습니다” (p. 27, 광인들은 ‘책 정보의 바다’를 공유하고 있었다)
독서 光人과의 만남: 피터 드리커 어려서부터 많은 유명인들을 가까이 하였다.
서평자는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만남’임을 깨닫는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린다. 독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독서하는 光人을 만나야 한다.
피터 드리커(Peter F. Drucker, 1909-2005)는 그의 부모 덕분에 어려서부터 고수들을 만났다. 그의 부친은 오스트리아 재정 장관이었다. 조세프 숨폐터, 프리드리히 아이에크 초대대통령, 존 케인즈를 만났다.
어머니 쪽도 막강하여 프로이트와 악수도 하며 당대의 고수들을 어려서 만나 자극을 받아 자연스럽게 그의 핏속에 용해되어 거목이 탄생한 것이었다.
‘미쳐야 미친다’. 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불광불급/不狂不及)
‘미쳤다’는 것은 분명히 부정적 언어다. 인격 모독이며 욕설에 가깝다. 그러나 이즘 세대의 ‘미쳤다’는 말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미쳐야 미친다’는 진짜로 무엇인가에 미쳐야만 그 목포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으로 태어나 무엇인가 정신차리고 무엇인가. 한 가지 일에 도전하며 미쳐야 하지 않을까? 또한 ‘미쳤다’는 것은 최고의 절제를 의미한다. 자신을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철저한 자기 절제와 훈련이 필요하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가능하다.
예수님도, 바울도 ‘미친 사람’이란 소리를 들었다. 예수님을 향해서 당시 사람들은 “미쳤다”, “바알세붑 들렸다”고 했다. 예수님의 가족들도 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다(막 3:31-35).
사도 바울은 스스로 광인이라 불렀다.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을 제외하고 ‘나처럼 되라’고 외쳤다(행 26:24-29).
예수님은 누구보다 강력한 성령의 통제와 인도함을 받으셨다. 진짜 미친다는 것은 가장 강력한 통제와 임재 들어간다는 말이다. 이단. 광신. 사이비는 절제와 철저한 통제가 망가져서 안전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쳤다는 것은 우직함과 한결같음이다.
책 읽기는 특별한 능력/은사가 요구되지 않는다: 우직함/미련함/고집스러움이 필요
책은 눈으로 읽고 머릿속에 그 내용을 담아 뇌로 읽는 것이기도 하지만 책은 엉덩이로 읽는 것이다. 우직함은 눈과 뇌에도 연관되어 있지만 우리의 신체 중에서 가장 연관성 있는 곳은 엉덩이다.
열혈 독서는 엉덩이가 무거워 책을 집으면 그 책을 모조리 읽을 때까지 엉덩이가 견디는 힘이 있어야 한다.
서평자는 2년여 동안 고시공부를 했다. 고시를 패스한 자들은 대체로 엉덩이가 무거운 자들임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미쳤다는 것은 활활 타오른 열정이다: ‘독서는 무한대의 연료를 공급해 준다’.
책 읽기의 장점은 언제든지 우리의 열정을 활활 태울 수 있는 연료를 공급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또 다른 연료가 준비된다. 독서는 평생 열정에 불을 지펴줄 연료가 준비되게 한다.
활활 타오르기 위해 필요한 발화점/산소의 공급/발화에 필요한 물질이 공급되어야 한다. 이들 3가지는 독서를 시작할 때 동시에 이루어진다. 우리의 영혼을 불태울 책은 어디서든지 얻을(구할) 수 있다.
“앎이 삶이 될 때” 누구든지 독서광이 될 수 있다. 독서에 빛나는 사람(광인)이 되려면 앎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독서를 은근히 자랑거리 혹은 잘남의 상징과 수단으로 여길 수 있다. 여기서 ‘앎이란 삶’은 단순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전부가 몸으로 체험/체득된 지식을 말한다. 여기서 앎이란 생사를 걸어야 하고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결국은 앎은 지식이 습득되어 체험되는 과정인 것이다. 이런 삶은 내공이 꽉 찬 알토란 인생일 것이다.
“구원도 영생도 체험으로 알아지는 삶입니다. 앎과 삶은 동일어 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앎과 삶이 달라져서 모진 욕을 먹고 있을 뿐, 우리의 신앙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앎과 삶이 달라 바리새인이 되는 것처럼 독서의 길도 앎과 삶이 같아야 합니다.” (p.66. 따라서 독서하는 光人은 앎이 삶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자이다)
2. 하루에 한 권의 책 읽기(혈): “누구나 하루에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을까?”
“한 달, 두 달, 일 년은 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하고 있기에 우리는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p.91)
저자(박종순) 목사는 “누군가 하고 있기에” 이 책의 독자들에게 도전하고 있다. 누구든지 반복/집중/꾸준함의 훈련을 하면 가능하다고 설득한다.
이런 루틴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반복적인 자기 복종과 훈련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 라이어> 그의 책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했다. 저자는 1만 시간의 독서라면 충분히 독서광이 될 수 있다고 단언하였다.
그러면 누가 하루에 한 권을 읽는가? → “진리에 배고픈 사람”
독서도 독서의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만이 책을 읽을 수 있다. 배고픔을 채우는 방법은 2가지다. 인스턴트 식품으로 위장 채우기와 된장찌개. 청국장 등 오랜 숙성된 음식으로 채우기다.
책을 읽는 사람은 오랜 숙성의 시간이 주는 맛의 깊이를 경험한 사람이다.
유럽의 최고의 향수는 불가리아산 향수다. 왜 그럴까? 불가리아는 동유럽에서 해발 고도가 높은 나라다. 불가리아산 꽃은 높은 산에서 벌과 나비를 날아들도록 사력을 다해서 향기를 발산한다. 진한 향으로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야만 한다.
진리에 배고프다는 것은 이렇게 깊은 곳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향기와 맛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함을 체험하고 나면 절대적인 것이 됩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진리를 맛보고 또 다른 잊을 수 없는 맛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독서입니다. 진리에 목마르다는 것은 한 번의 향기와 한 방울의 꿀로 세상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생명의 맛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pp.95-96)
“질문을 잘하는 사람”: 세계 최강 유대인의 공부법 ‘하부루타’
질문을 잘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아는 사람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가를 아는 자이다. 학생이 질문하지 않는 것은 배움에 관심이 없다는 뜻인 것이다.
한국인은 대체로 거의 질문을 안 한다. 하부르타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토론/논쟁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질문하며 토라와 탈무드를 어려서부터 공부한다. 그래서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의 30% 학생이 유대인이며 노벨상의 30% 가량 받는 비결은 하브르타에 있다.
서평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원에서 학위를 마칠 때까지 줄곧 언제 어디서나 질문이 가장 많은 학생이었다. 총신 신대원 3학년 한국교회사 시간에 (이만열)교수님께 질문했다. “존 로스(John Ross) 선교사가 한글 신약성경을 번역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요?”
이 질문이 결정적인 모티브가 되어서 5년 후 늦은 나이에 영국 스콧틀란드 아버딘대학에서 존 로스의 선교방법론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박사(Ph.D) 논문을 쓰게 되었다.
나가는 말(결론):
읽히기 전에 먼저 읽을 수 있다/공감 능력과 영감을 얻게 된다
일일 일책을 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가보지 못한 곳을 먼저 읽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읽기도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더욱더 공고하게 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 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는 네덜란드인이지만 제2의 고향은 스페인인이라 할 만큼 스페인을 잘 아는 감독. 그래서 그는 스페인팀은 지역적 갈등이 심한 국가대표팀임을 간파, 먼저 스페인팀을 먼저 읽었기에 서울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 승부차기 5:3 승리!
일일 일책을 하면 읽히기 전에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게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기 전에 제자들을 먼저 읽으셨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먼저 읽으셨다.
성공적인 목회도 먼저 성도들을 읽는 것이다. 선교사도 먼저 선교지의 문화와 현지인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알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책은 바르게 읽는 능력과 색다르게 읽을 수 있는 지혜를 동시에 전달합니다. 책이란 사람이 나열해 놓은 단어의 조합이지만, 나의 생각을 나열하고 조합해 좋은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힘이 있음을 경험하게 합니다” (pp.118-119, 독서는 지식과 지혜의 보고)
“글이란 몸으로 부딪치며 얻어진 삶의 경험이기에 독서는 우리의 신경 세포를 깨워 공감하는 능력을 갖게 합니다…공감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영감은 일일 일책을 하면 얻게 됩니다. 공감이 오감을 통해서 반사적으로 나오는 끄덕임이라면 영감은 오감을 통해서 새로운 뇌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영감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pp.121-122, 1% 영감이 없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에디슨’이 될 수 없다)
서평후기:
서평자는 <열혈독서>를 2023년 8월 15일 한국방문 중에 교보문고서 만났다. 책 제목이 확 눈을 끌었다. 선교현장에서 오랜만에 모국을 방문할 때마다 바쁜 중에도 반드시 2-3번 서점을 찾는다. 책 제목에서 ‘크리스천의 일일 일책(日日 一冊)’,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비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단번에 속독하였다. 2년 만에 다시 서평을 쓰기 위해 본서를 읽었다. 이즘은 도무지 책을 안 읽는 시대가 분명하다. 그럴수록 예수쟁이는 시대를 역행하며 열혈독서를 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살며 세계선교 완성이 앞당겨질 것이다. “독서는 변화를 위해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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