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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지만 KTF 부사장 역임하고 마케팅계 거목이 된 조서환 장로의 영화같은 인생스토리 (1)

엄무환 국장 | 기사입력 2023/01/27 [21:27]

군에서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지만 KTF 부사장 역임하고 마케팅계 거목이 된 조서환 장로의 영화같은 인생스토리 (1)

엄무환 국장 | 입력 : 2023/01/27 [21:27]

조서환 장로의 인생을 빚어낸 운명적 사건 스토리는 마치 잘 짜여진 각본대로 연출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군에서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고 머리에 24개의 파편이 박히는 등 죽음의 사선까지 갔었지만 재기하여 애경-영국 유니레버 마케팅 전략팀장과 미국 다이알사 마케팅 이사스위스 로슈사 마케팅 이사를 거쳐다시 애경산업으로 돌아가 마케팅 상무를 역임한 후 KTF 마케팅 전략 실장을 거쳐 부사장까지 지냈으며글로벌기업 세라젬그룹의 CEO를 역임하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격적인 문무겸장 마케터로 마케팅의 달인’, ‘마케팅의 살아 있는 전설’, ‘마케팅의 귀재’, ‘마케팅의 대가’ 등으로 불려질 만큼 마케팅계의 거목이 된 ()조서환 마케팅그룹 대표 조서환 장로(서초교회).

 

조서환마케팅그룹이 지난 3월에 개강한 마케팅경영최고위과정 입학생들 기념사진    

 

저는 충청남도 청양에서 태어났다어머니가 10명을 낳으셨는데 두 명이 죽고 8명 중에서 제가 다섯 번째다척박하게 살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외향적이어서 초등학교 때 반장을 하고 고등학교 땐 학생회장을 했다그리고 어려서부터 장군감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또래들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커서 그랬던 것 같다말이 씨앗이 되었는지 마음속에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장군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조 장로는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다 보니 공부를 충실히 하지 못해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떨어져 3사관학교에 들어갔고, 1978년에 소위로 임관했다며 “3사관학교는 2년제여서 앞으로 군대 생활을 하려면 필히 4년제 대학을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경야독했다뿐만 아니라 윗사람(상관)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새벽 일찍 나와 태권도 가르치고소위 때 커피 따라주면서 관계 맺기를 했다그러다보니 부대 안에서 똑 소위라는 별명까지 들었다하지만 그게 제 운명을 바꿨다고 말한다.

 

아니 똑 소위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맡은 업무를 확실하게 소화했던 그것이 오히려 운명을 바꾸게 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더욱 귀를 쫑긋했다.

 

“37사단에 근무했을 때 한O수 대대장님이 저를 엄청 신뢰하셨다그래서 대간첩작전훈련에 ROTC 16기 출신의 소위가 나가야 하는데 대대장님이 저더러 대신 나가라고 하셨다그런데 이 훈련에서 일어난 사건이 제 운명을 바꿨다수류탄 폭발사고가 그것이다수류탄을 살펴보니 옛날 꺼라 녹도 슬고핀도 잘 빠지지 않았다그래서 그냥 멀리 던지려고 오른손으로 수류탄을 집어 머리 위로 올리는 순간 수류탄이 터져버렸다이미 핀이 빠져 있었음을 몰랐던 거다만약 이때 수류탄이 가슴 부위에서 터졌다면 몸이 산산조각났을 것이다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러나 오른손의 대동맥이 끊어져 엄청난 출혈이 났다이때의 상황에 대해 조 장로는 자신의 저서인 <모티베이터(동기를 부여하는 사람)>(위즈덤하우스, 2011)라는 제목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 조서환 장로와 그의 저서들    

  

.” 정신없이 물을 찾자 누군가 내 입술에 제 침을 발라줬다. ‘더럽게 왜 침을 바르나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빨아먹었다차는 전속력으로 달려가고헬리콥터는 막 뜨려고 들썩들썩하는데거기서 하얀 천사들이 내려오는 모습까지 보고 의식을 잃었다.

 

사고 후 얼마나 지났을까의식이 깨어난 순간 누가 눈 떴어요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눈을 딱 뜨니 아버지가 울면서 병실로 들어오시는데그냥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고 이놈아으흐흐으흐흐” 이러시면서 반쯤 뒤집어지신 것 같았다.

 

아버지군인 생활은 더 못하겠지만 저 살아 있지 않습니까” 나는 깨어나자마자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아버지를 위로하기 시작했다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그랬더니 아버지는 내가 전 재산 다 팔아서라도 너 뒤 대줄테니까 제발 제대로 좀 살아다오라고 말씀하셨다자살을 할까봐 걱정하신 것이다그래서 반드시 멋지게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아버지라고 아버지를 위로했다

 

지난날을 회고하며 담담히 말하는 것 같았는데 휴지로 눈물을 훔쳤다이처럼 수류탄 폭발사고가 조 장로의 인생을 바꿨다장군이 되고 싶다는 마음의 열망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더 이상 군 생활을 할 수 없도록 종지부를 찍게 한 것이다그런데 조 장로의 인생에 또 한 번의 운명적 사건이 생겼으니여자친구와의 결혼이 그것이다.

 

▲ 조서환 장로 부부    

  

여자친구와는 초등학교 1학년 1반 때 만나 사귀었으니까 사귄 햇수로만 해도 10년의 세월이 훨씬 넘었어요그런데 여자친구는 4대째 모태신앙이었지만 전 그때까지만 해도 신앙생활을 전혀 안했어요더욱이 제가 오른손을 잃어버린 지체장애자가 되었잖아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가 저를 버리지 않고 저와 결혼했어요그래서 그때 제 마음에 깊은 곳에서부터 어떻게든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태산만큼 큰 파도처럼 밀어닥쳤습니다

 

조 장로의 운명을 가른 수류탄 사고와 여자친구와의 결혼특히 조 장로는 그가 쓴 책에서 사고를 당한 후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고통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애인 생각이 났다머리며 팔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 있는 미라 같은 모습을 보여주려니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한 달 전 면회 왔을 때만 해도 오른손이 있었는데한 손이 없는 상태로 그녀를 어떻게 만날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고 소식을 들으면 세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내 머릿속에는 세 가지의 시나리오가 그림처럼 그려졌다첫째나를 본 순간 놀라서 도망칠 것이다둘째나를 본 순간 이게 웬 날벼락이냐고 엉엉 울 것이다셋째하도 기가 막혀 그냥 멍하니 말문이 막힌 채 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 가지 중 어떤 것이 맞든지 내 가슴은 미어질 것이었다연락하자니 두렵고안 하자니 보고 싶고자존심이라면 자존심이고 사랑이라면 사랑인데나의 다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지금까지 살면서 유일하게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내 가슴은 그녀가 보고 싶어서 거의 미칠 지경이 됐다결국 힘들게 연락해서 그녀가 왔다그때 나는 왼손에는 링거를 꽂고오른팔은 붕대로 칭칭 감아 공중에 매단 채 누워서 어머니가 떠먹여주는 밥을 먹고 있었다고향 뒷산에 흐드러지게 핀 산도라지 꽃 빛깔의 코트를 입은 하얀 얼굴의 그녀가 통합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그 모습이 눈부시게 예뻤다

 

그렇게 예쁜 그녀가 내 모습을 보자 아무말 못하고 그냥 우두커니 서 있는데 가슴이 미어졌다세 번째 시나리오가 맞은 것이다그녀는 나를 본 순간 멍해져서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병실 안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졌다

 

어머니는 밥을 먹여주시다가 멈췄고병실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우리 두 사람을 위해 슬슬 자리를 피해줬다나는 속으로 간절히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지 묻고 싶었다그것도 정말 급히 묻고 싶었다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자존심보다 더한 것은 두려움이었다만일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한 달 전에는 물론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괜히 물어봤다가 아니라고 하면 어쩌나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아니 어쩌면 그녀가 쉽게 대답하지 않도록 시간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사람들이 나간 뒤 오랫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그 사람은 우두커니 서서 계속 날 바라보고 있었고나는 내 처지보다 그녀가 왜 그렇게 안타깝고 딱해 보이는지마음이 너무 아팠다날 사랑하는지 묻고 싶다가도 이 사람을 보내줘야 하는데 나랑 헤어지면 누가 사랑해줄까 싶기도 하고그 짧은 시간에 별별 생각이 다 머릿속을 오갔다

 

그렇게 말없이 서로 바라만 보다가 한 30분쯤 지났을까 마지막 남은 용기를 짜내어 겨우 입을 열었다. “아직도사랑해?” 그랬더니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크게 두 번 끄덕였다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꼭 천사같았다세상을 다 얻어도 그보다 기쁠 것 같지 않았다기쁨과 행복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고 하지만정말 그때 느꼈던 행복감은 말로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그 모습은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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