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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여자에게 주어진 일’ … “여성은 남자보다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의 달' 두번째 설교(5월 3일 새벽기도회)

엄무환 국장 | 기사입력 2023/05/03 [08:02]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여자에게 주어진 일’ … “여성은 남자보다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의 달' 두번째 설교(5월 3일 새벽기도회)

엄무환 국장 | 입력 : 2023/05/03 [08:02]

▲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 "성경은 여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겁니다귀하다는 거예요교회안에서 감독만큼 중요한 직분이라는 거죠" "여성은 남자보다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한다이게 제가 오늘 본문을 향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입니다"   

 

성경본문 : 디모데전서 311절 

여자들도 이와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결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 설교제목 : "여자에게 주어진 일"

 

어제 말씀에 이어서 오늘은 여자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제가 어제와 똑같은 관점에서 여성을 살피지 않겠지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여성성이 갖는 의미를 함께 좀 살펴보고자 합니다.

 

당연히 여러분께서 저와 동의하시는 부분들이 있고 또 성경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우리 고대 사회부터 뭐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항상 2등 시민이었습니다.

 

로마에서는 여성은 남편의 그냥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고요. 히브리 문화에서도 여성은 아이들을 돌보고 가정 일을 하는 일꾼이다 혹은 아이들을 낳아서 상속자를 낳아주는 도구로 취급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자들은 제대로 인간 취급을 못 받고 이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남자들이 공부할 때 교육을 제공받았을 때 여자들은 그냥 남자를 돕는 그러한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여성들이 각 사회에 많은 분야에 진출했지만 우리가 유리천장이라고 하는 보이지만 올라갈 수 없는 그러한 많은 막다른 골목 같은 그런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가 그래도 많이 바뀌었죠. 우리가 여성을 향해서 갖고있는 인식들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특별히 기독교가 여성의 인식을 바꾸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근데 모순되게도 한국의 여성의 모든 역할들과 위치를 바꾼 기독교가 여전히 여성에 대해서 차별적인 신학과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이 되는 디모데전서 2장만 봐도 우리가 3장을 읽었지만 2장만 봐도 여성을 차별하는 가르침이 지배적입니다.

 

2장 뒷부분에 어떻게 되냐면 여자는 일체 순종하라. 가르치는 것과 주관하는 것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가르칠 수 없고 주관해서도 안됩니다.

 

또 아담이 먼저 지음 받았다는 것. 먼저 누가 지음을 받았냐는 거죠. 그리고 또 하와가 속아서 죄에 빠졌다 이렇게 말하면서 이게 바로 지금까지도 우리 기독교를 지배하고 있는 여성에 대한 레토릭입니다.

 

이 본문을 마주하는 현대 여성들은 굉장히 당혹스러움을 감추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또 신학자들도 이 말씀을 중립적으로 풀어가야 하는 신학자들도 이 변증에 만만치 않은 짐을 지고 가야 합니다.

 

근데 본문의 내용은 분명합니다. 여성들은 이런 면에서 쓰임을 받을 수 없다고 얘기를 하죠. 다만 제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디모데전서가 굉장히 개인적인 서신과 지역적인 그러한 지역을 다루고 있다는 거죠.

 

디모데전후서는 다른 서신서에 비해서 좀 더 개인적인 편지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있는 여성들, 특별히 아마 좀 그랬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너무 여자들이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라. 이거는 아마 다른 지역들이 이렇게 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에베소 지역의 여성들이 아마 부유하고 또 꾸미기를 좋아해서 지적했던 부분들이 아닌가.

 

그러면 조금 더 지역적인 문제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거를 다 가져다가 똑같이 지금 2천년 후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은 좀 무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근데 이런 본문을 근거로 지금도 어떤 교단들은 여성 안수를 허락하지 않고 있고요. 여성은 목사가 될 수 없고 우리 교단도 여성 안수를 허락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러나 최소한 우리 교단은 이런 본문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2장은 그래서 여자들한테 좀 우울한 장이다. 그런데 제가 오늘 본문을 읽어들인 3장에 가서 굉장히 좀 다른 기준들이 제시가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여성에 대해서 기준을 내놓는데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자면 이렇게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이 본문 말씀을 어저께 발견을 하고 말씀을 읽고 앞뒤 맥락을 좀 살펴보면서 느꼈던 건 이겁니다.

 

여성은 남자보다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한다. 이게 제가 오늘 본문을 향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입니다.

 

2장에는 여성을 굉장히 차별해서 말하는 것 같지만 결국 3장에 와서 3장의 내용이 뭡니까?

3장은 감독과 집사의 기준을 말하는 장입니다.

 

감독은 굉장히 높은 사람이고 귀한 사람들이고 집사도 교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인데 그 가운데 여성이라고 하는 어떤 직분이 아니라 여성이 나옵니다.

 

그리고나서 먼저 이 결론을 내리고 말씀을 드리는데 감독들과 집사들에게서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들을 여성에게서 요구하고 있다는 거죠.

 

여러분 왜 여자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오늘 말씀에 나오는 정숙하고 모함하지 않고 절제하고 모든 일에 충성된 자, 이 부분을 여러분이 읽으면서 왜 여성은 이러한 것들을 요구했을까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편견, 나쁜 쪽을 먼저 생각합니다. 절제를 안 하는 여자들은 그래 맞어. 여자들은 이렇게 뭔 문제가 있으니까 모아놓고 입이 저렇게 싸고 말이야. 남들 욕하고 다니니까 여자들은 모함하지 말라고 하는구나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여기 여자의 특수성이 있는 게 아니라 여자에게 요구하는 감독과 집사에게 똑같은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러분 감독과 집사가 누구입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주 훈련된 특별한 남자들을 말합니다. 여기 감독과 집사는 특별히 성별로 나타나지 않지만 이게 다 남자예요 한마디로 말해서.

 

일곱 집사 우리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 일곱 집사 있지 않습니까? 여자가 어디 있습니까? 여자는 원래 집사가 아닙니다. 감독은 더더욱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32절 말씀 한번 보실까요? 32절 말씀은 감독에 대한 말씀이에요.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이게 감독들에게서 요구하는 기준들이 있는데 감독에 맞는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가르치기를 잘하며 이거 감독 목회자가 해야 되는 일입니다.

 

자 그런데 여기 오늘 여성과 똑같은 기준들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까? 절제하며, 신중하며 이것이 단정하며와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감독들에게서 요구하는 절제와 단정함이 감독들은 그 외에 가장 중요한 지도자들이고 평범한 신도들이 아닙니다. 연륜과 경험이 많고 그 가운데서 믿음으로 특출난 사람들이 받는 직분인데 그 위치의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절제와 단정함이예요그것을 그대로 여성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자들이라고 하잖아요. 여자들 또는 직분이 특별한 사람들을 말하는 게 여자들중에 권사들도 아니에요. 여자들중에 목사도 아니에요. 감독도 집사도 아닌 여자들 모두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감독과 같다라는 거죠.

 

이게 여성을 차별화할 수 있으면 차별한다면 가능한 기준이겠습니까? 여성을 하찮게 여기면 가능한 기준이겠습니다. 여성이 교회 안에서 하찮은 존재면 이런 것들을 요구하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게 여성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만약에 문제가 있어서 요구하는 기준이라면 감독들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걸 요구하셨지 않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성경은 여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겁니다, 귀하다는 거예요. 교회안에서 감독만큼 중요한 직분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도 당연히 이러한 기준들을 높은 기준을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여성이라면 여러분의 신앙과 삶과 성품과 모든 기준들을 높이셔야 합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이 목회자와 같은 수준의 믿음과 성품과 자세를 가지셔야 돼요. 이게 남자들에겐 특별한 사람에게 요구하지만 여성들 모두에게 똑같은 기준을 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절제와 단정함과 정숙함은 이게 아무나 갖는 기준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을 여자들에게는 모두가 가져야 하는 삶의 자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성 모두는 귀하다는 말입니다. 특별하다는 말입니다.

 

특별한 남성들, 감독들과 집사들의 기준이 여성 모두에게는 다 똑같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성이라면 적당한 기준으로 살지 마시고 높은 기준으로 사시길 축복합니다.

 

여기 모함하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거를 야 그래 드디어 여자들 아 잘됐다. 여자들이 좀 들어야하는 말이야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8절 말씀 보실까요? 8절 말씀은 집사들에 대한 말씀이에요. 집사들에 대해서 말씀하는 건데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와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하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 를 탐하지 아니하고집사들 남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보면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않고라고 되어있습니다. 이거 집사들에게 요구되는 말이에요.

모함하지 말라 일구이언하지 말라 정중하라. 이게 똑같은 말들입니다.

 

충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모든 서신서에서 골고루 나타나는 가장 귀한 본문 중의 하나가 충성입니다.

여성에게도 당연하듯이 충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게 아닙니다. 여성은 이 정도 해야 된다는 거, 라합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충성했듯이 룻이 나오미와 보아스에게 충성했듯이 브리스길라가 복음에 충성했듯이 여성도 충성의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충성하시길 축복합니다. 여성들이 충성해야 할 때 가정이 살아나고 여성이 충성할 때 사회가 살아나고 교회가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남자보다 나으시길 축복합니다.

 

자보다 낫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남자들보다 나은 존재가 되셔야 된다라는 거죠.

 

저는 오늘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자보다 나은 여성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어디에서든지 이제 여성들이 귀해야 합니다.

여성들이 낮은 기준으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나는 뭐 특별한 직분이 아니니까 대충 살아야지. 아닙니다. 여러분의 기준을 높이십시오. 절제하시고 단정하시고 모함하지 않고 충성하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삶들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에 있어서 어떤 남성보다 뛰어나게 그 일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여성들이 맡은 일들이 거기서 빛이 나고 아름다워지고 회복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일들이 있어요.

 

여자는 못할 거야 라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여자는 그래서 못 써 라는 말이 나오면 안 됩니다.

 

저는 참 안타깝게도 여성들을 경험하면서 편견을 갖게 될까 봐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성 목회자를 쓸 때 가질 수 있는 편견들과 그거를 만드는 분들이 있어요. 여성들을 교회하면서 쓸 때 생기는 문제들, 이런 것들 때문에 자꾸 여성에 대한 편견이 생겨서 그로 인해서 저도 제 마음이 바뀔까봐 두려울 때가 있어요.

 

여러분이 어디에 서시든 여성을 대표하는 존재로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이 가장 귀한 남성들에게 주어진 기준임을 기억하시면서 여러분들은 더욱더 기도로 깨어나시고 교회를 믿음으로 지켜주시고 여러분이 맡겨주신 일들을 그 어느 누구보다도 충성되게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가 살아나고 여러분의 가정에 힘을 얻고 우리 사회도 건강하게 살아나는 은혜를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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