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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배안호 박사 서평

오병훈 국장 | 기사입력 2024/04/09 [22:26]

홍성철 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배안호 박사 서평

오병훈 국장 | 입력 : 2024/04/09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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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안호 박사(영국 선교사, 전 총신대 칼빈대 명지대 교수)

 

 

성경은 로 쓰인 책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9:22b)

 

들어가는 말(서론): 

 

예수 그리스도의 는 지금도 교회가 전해야 할 핵심 진리이다

 

2024년 부활절을 지났다. 우리는 152주 중, 고난주간 외 51주를 부활절로 지킨다. 그래서 십자가() 설교는 사순절(고난주간)에만 집중된다. 십자가의 피는 더욱 설교해야 옳다. 

 

성경은 피로 쓰인 책이다. 구약성경에서 그처럼 많이 나오는 ’! 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모형(模型)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분의 피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성경의 핵심을 잃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The Blood of Jesus Christ): 사실.구원.능력> (홍성철, 도서출판 세복, 2023, 190페이지)가 마침내 출판되었다.

 

이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물론 특별히 설교자들에게 귀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성경전체를 그 분의 피라는 주제로 명쾌하고 밝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작은 책이지만 묵직한 양서(良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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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전하지 않는다면, 어떤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인을 성도로 변화시킨다. 그 피를 전하지 않는다면, 어떤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그리스도인으로 깨끗하게 그리고 능력있게 살게 한다. 그 피를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지 않으면,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분의 피는 천국비자이기에, 그 피를 의지하지 않으면,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는 지금도 교회가 전해야 할 핵심 진리이다. 그 분의 피를 통해서 교회가 거룩하게 되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사실과 구원과 능력이 들어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깨닫고 전하기 위해서 이 책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뒷표지, 서평자 강조)

 

홍성철 목사는 25세 약관의 나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구원 받았다. 그후 그 피를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면서 전도자, 선교사, 목회자, 신학자, 저술가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의 일생과 사역을 점철(點綴)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문자화(文字化) 한 것이 본서이다. 그런 이유로 본서는 저자의 신앙이자 동시에 신학이다.

 

홍 목사는 35권의 그의 저서 가운데서 본서를 그의 인생과 사역을 대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한국교회 최초의 전도학 박사이자, 한국 신학계에서 최초의 전도학 교수이다. 그는 전도학의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탁월한 전도자이다.

 

GMTC의 이태웅 박사는 홍성철을 세계적인 전도학의 대가(大家)이며 그의 스승인 로버트 콜만(Robert Coleman)박사는 홍성철을 자신이 가르친 학생 중에 가장 훌륭한 제자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하였다. (p. 9, 본서의 추천사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29(6권은 영문판으로)책을 출판했다. 7권의 책을 편집하였고. 영어로 된 기독교서적 30권을 번역했다. 현재는 미국 Atlanta Cumber-land Theological 부총장. 도서출판 세복의 발행인이다.

 

<나는 어떻게 예수를 만났는가?>, <회심 거듭남의 의미와 적용>, <복음주의 실천신학개론>, <전도학>, <선교세계>, <불교권의 선교신학과 방법>, <How I Met Jesus>. 특별히, 그의 대표 번역서인 <주님의 전도 계획><전도학>은 한국교회의 제자훈련과 전도학의 교과서가 되었다.

 

본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어떻게 불신자를 구원하고,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드는가를 소상하게 기술하고 있다. 3부로 구성. 1부에서는 자체를, 2부에서는 피를 통한 구원, 그리고 제3부에서는 피의 능력을 다루었다. 서평자는 각 1, 2, 3부의 핵심 주제 5개중 1주제씩만 간단히 소개하며 서평할 것이다.

 

예수님의 세 번 흘린 ’: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만 (피를 흘리신 것이) 아니다. 두 곳이 더 있는데, 곧 겟세마네 동산과 기둥에 묶여서였다. 그렇게 세 번 흘린 피가 죄인을 구원하는 놀라운 능력이 되었던 것이다” (p. 22, ‘세 번의 흘린 피란 소제목에 서평자는 먼저 주목하였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투성이 모습이다. 예수님의 피는 단순히 죽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주님의 피는 인간의 죽음과 심판을 대신 떠 맡은 죄의 값이었다. 그 피 값으로 죄인(sinner)이 성도(saint)로 탈바꿈하는 것이었다.

 

십자가에서 흘린 .

 

우리는 2004년에 개봉된 멜 깁슨의 영화(Passion of Christ)에서 보았던 대로, 예수님은 엄청난 채찍을 맞아 몸 전체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갈보리산(골고다)을 오르셨다. 그 골고다에서 주님은 두 행악자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19:17-18) 

 

그 분이 채찍에 맞은 관정에서 골고다까지 800m밖에 되지 않은 짧은 거리를 라틴어로 비아 돌로사(Via Dolorosa)라 하는데, 그 뜻은 고통의 길또는 슬픔의 길이다. 왜 그렇게 불리는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죽음으로 내 몰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길이가 3m 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니 고통의 길이 아닐 수 없다. 밤새도록 재판을 받느라고 잠도 자지 못하고, 그토록 처절하게 채찍질을 당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운 걸음이었겠는가?” (p. 28, 서평자는 첫번째 이스라엘 성지순례 때, 그 비아돌로사 길을 걸으며 통곡하였다)

 

마침내 골고다에 이르자 로마 군인들은 십자가에 대고 그분의 양쪽 손목과 양 발에 못을 쳤다. 그 네 곳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그 분이 십자가에서 피를 쏟으며 수치의 죽임을 당하시므로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갈보리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이라.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찬송가 1501)

 

겟세마네에서 흘린 .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략 3시간 머무셨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26:38).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민과 슬픔의 그 시간에(26:27) 가장 가까운 베드로/야고보/요한에게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요청하셨다.

 

누가는 이때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22:44)

 

이 핏방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값으로 흘린 첫 번째 피였다. 그분의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된고뇌로 인해 몸에서 솟아나는 핏방울이었다.” (p. 23) 

 

주님의 이 핏방울은 세상 죄를 지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의 모습이었다. 저자, 홍성철 목사는 이때에 흘리신 예수님의 그 핏방울은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몸이 피투성이가 된 처형보다 더 처절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p. 23)고 했다. 서평자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런 절박한 그 시간에 3명의 애제자(愛弟子)들은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기둥에 묶여서 흘린 .

 

겟세마네 동산에 예수님은 핏방울을 흘리며 기도를 마쳤을 때, 가룟 유다를 앞세운 유대교 지도자들이 보낸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님은 결박 당했다”(18:21) 그들은 공회를 소집하여 사형을 결의하며 빌라도에게 십자가의 처형을 요구했다. 짧은 밧줄로 두 손목을 묶고, 그 밧줄을 기둥에 묶었다. 그 밧줄은 짧기에 주님은 엎드릴 수 밖에 없었다. 맬 깁슨의 Passion of Christ의 강한 영상, 주님의 모습이 절절이 아리어온다. 

 

예수님은 인정사정 없이 뼈나 납덩이가 붙어있는 로마의 채찍을 맞았다. 옷이 벗겨진 그분의 등을 병정들은 채찍으로 내리쳤다. 등에서 피가 튀었다. 가슴엔 납이 박혔다. 살점이 뚝뚝 떨어지면서 피가 쏟아졌다. “관정(官庭)의 기둥에 묶여서 채찍에 맞으면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것은 자유의 몸이 아니라, 결박된 몸이었다. 그렇게 흘리신 피는 그분이 흘린 두번째 피였다. 그 피는 겟세마네에서 흘린 피와 골고다에서 흘린 피를 연결하는 피였다.” (p. 27)

 

예수 그리스도는 세 번씩이나 그렇게 처절하게 피를 흘리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죄와 심판이 그만큼 확실하고 무섭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처럼 한계 있는 인간을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을 인간이 받을 죽음과 심판을 대신해서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피퉁성이가 되어 죽게 하셨다. 인간이 죄로부터 해방되어 변화된 삶을 영위하라고 말이다” (p. 31, 아멘 아멘. “웬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143)

 

를 통한 구원: 해방 속량/ ’의롭다 하심’/ 화목제물화목

 

우리를 사랑하사 그이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1:5-6):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속량]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9:14)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5:9)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3:25)

그의 십자가의 피로…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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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 피를 통해 우리를 해방하셨고, 그 피로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했다. 그 피가 우리의 죄값인 속량이었기에 가능한 역사였다. 그뿐 아니라, 그 피를 통해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 재판관이신 하나님이 그 피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처럼 의롭다 하신 것이다. 그 피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돌려놓는 화목제물이 되었다” (p. 115)

 

모든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오려는 발버둥이다

 

화목(和睦)은 좋은 관계를 전제로 한다. 성경은 인간과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져 관계가 멀어졌고,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enemy)가 되었다고 선언한다.(4:4, 1:21, 5:10). 인간은 하나님을 멀리 떠난 원수(alienated enemy)가 되어 다른 많은 사람과도 원수 상태에서 살게 되었다.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죄악의 제거를 위해 사랑과 지혜의 능력을 동원하셨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1:20)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면서 우리가 누리는 특권은 하나님과 화평(샬롬)이다. 이런 놀라운 샬롬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화목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을 바울사도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1:20).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죄인이 하나님과 관계회복 곧 화목을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나아가서 자연(만물)과의 관계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놀라운 관계의 변화가 곧 화목(reconciliation)이다. 따라서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새 사람이 되어서 화목하게 사신들(ambassadors)인 것이다(고후5:20).

 

의 능력: 대면/거룩/섬김/이김/천국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10:20)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13:12)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을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9:14)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12:11)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7:14)

 

우리는 넉넉히 이기는 자, we more than conquerors” (8:37b)

 

인생은 전쟁터다. 영적 세계 전쟁은 더 심각하다. 영적전쟁의 시작은 사탄이 하나님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되었다(14:12-15). 이 사탄과의 전쟁에서 사람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는 하나님은, 즉각 여자의 후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다(3:15b). 성경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 승리는 간단하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라(we are more than conquerors through him who loved us)”(8:37)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사탄은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자유자재로 일으키는 막강한 존재다. 사탄은 예수님을 공격하기 전에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배하고 땅으로 떨어졌다(12:7-9). 사탄은 땅으로 떨어진 후에도 전쟁을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게했다. 그러나, 어린양 예수님은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할렐루야!

 

사탄은 처음부터 살인자, 거짓말쟁이요 모든 거짓의 아비(8:44)

 

사탄의 속임수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거부하는 있는가? 바울 사도의 진단이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다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3-4). 그렇게 마음이 혼미하게 된 한 예가 위해서 언급한 것처럼,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다.” (p. 157, 무신론 사상,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예수님의 피를 거부한다)

 

사탄은 지금도 교묘하게 그리스도인들을 밤낮 참소한다.(12:10) 사탄은 참소자(accuser). 사탄의 참소로 시시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무력감, 열등감에 빠지며 스스로 정죄하며 의기소침하게 된다. 부활절을 지난 주에 보냈지만, 부활의 감격은 1주일도 못 간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담대하게 전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솔직히 오늘날 교회에는 형식주의 종교생활에 머물러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너무 많다.

 

무력감, 죄책감에서 이김(conquer)의 비결은?--> ‘어린 양의 피’/’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12:11)

 

막강한 사탄과의 영적전생에서 승리의 비결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지 않다. 어린 양에게 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어린 양의 피를 통해서 이긴다. 예수님의 피는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9:12) 과거의 모든 죄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씻어주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가? 얼마나 복되고도 기쁜 소식인가? 그래서 복음(福音)이다. 어린 양,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서(redemption, to redeem) 하나님께 드렸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소유가 된 자들이다. 하나님의 손 안에 넣어 주시고 주님 자신이 친히 지켜 주신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손과 어린 양의 포개진 손에 동시에 들어있다(10:28-29). 가장 안전한 곳이다. 이 우주의 주인이신 그 두 분의 손안에 있는 자가 바로 구원받은 모든 예수쟁이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손을 놓고 만 있으면 안 된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이 똘똘 뭉쳐서 교제하면서 힘써 싸워야 한다 (p. 160,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하다. 교회의 예배가 살아있어야 한다)

 

나가는 말(결론):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리라”(9:22b)

 

예수 그리스도가 피 흘리고죽었다는 구체적인 묘사는 신약성경 전체에서 이곳 밖에 없다. 비록 한 번 밖에 나오지 않지만, ‘피흘림이란 묘사만큼 그 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뜻을 적절하게 함축한 묘사는 없을 것이다” (p. 174, 이는 저자, 홍성철 목사의 놀라운 통찰이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절에 2번 피가 나온다. 구약 율법시대의 동물의 피와 신약 은혜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의 피다. 주님의 피흘림의 목적은 죄의 용서와 죄의 굴레에서 해방이다. 

 

히브리서는 신약성경에서 피를 가장 많이 (20) 언급한다. 20회중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9번이나 언급하며 주님이 피를 흘리며 죽은사실을 강조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13:20)라고 기록하였다. 여기서 이끌어 내심은 주님의 부활의 역사를 뜻한다. (p. 175)

 

예수님의 피는 영원한 언약의 피’! à 평강의 하나님과 화평을 날마다/순간마다 누리자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이 같은 엄청난 사실(진리)를 모르면 사탄에게 필패(必敗)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의 그 피는 영원한 언약의 피. 주님의 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서나 평강의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이 평강을 날마다 순간마다 누리자.이 교제는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언약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이 언약을 깨뜨릴 수 없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과 원수 되어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였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로 천국백성이 된 것이다. 천국 입국허가 사증(査證)어린 양의 피이다. 그 피를 통해서 성도는 모든(과거/현재의) 죄에서 해방되어 마침내 천국으로 들여 보낼 것이다. 할렐루야!

 

기독교는 결단코 종교가 아니다. 그런데도 실제로 이 세상의 수많은 종교들과 같이 치부되고 있고 실제로 예수쟁이들도 종교화 되어 그 속에서 생명도 감격도 눈물도 없은 신앙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듯하다. 성경은 피로 기록된 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더 자주 설교하고 전해야 한다. 피설교는 사순절/고난주간 뿐만 아니라, 1년 내내 강단에서 설교해야 옳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중요성을 그처럼 자주 언급한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렇게 경고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10:29). 이 경고는 참으로 엄중하면서도 무서운 영원한 형벌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경고한다.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p. 176)

 

생명의 주여 면류관 받으시옵소서. 날 위해 쓰신 가시관 나 기억합니다. 저 겟세마네 기도를 늘 기억하게 하시고 그 십자가 은혜로 날 인도하소서. (1541) 아멘 아멘

 
 
사진으로 보는 윤석열 대통령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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