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오늘을 사는 지혜, 내일을 내다보는 로드맵, 인생의 blueprint(청사진)’
들어가는 말(서론) “이 책은 마치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을 보는 것 같습니다”(이양재 목사)
“참으로 천국의 시민답게 멋지게 살고 싶어요”. “정말 모호하고 혼란스러워요. 명쾌한 답을 알려 주세요”. “제 삶을 변화시키고 주님을 더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는 책은 없을까요?”. “아직도 율법과 은혜 사이에 고민이 있어요”. “솔직히 십계명은 옛 시대의 유물 같아요. 좀 더 명쾌하고 탁월하게 이 시대의 법적 근거까지 보여 주는 책이 있나요?”
“보통 십계명 강해 설교는 윤리 중심일 수 있으나, 김 목사님의 십계명 강해는 그리스도 중심의 은혜에 입각한 윤리를 전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가 자칫 윤리적 도전이 약할 수 있으나, 김 목사님의 십계명 강해는 윤리적 도전도 예리하고 강합니다” (권성수 대구동신교회 원로목사, 추천사)
<인생의 불루프린트 십계명>(QTM, 2023). 저자는 말한다. “십계명은 오늘을 사는 지혜요, 내일을 내다보는 로드맵이며, 성도의 삶을 그리는 불루프린트입니다!”고. 지금까지 서평자가 읽었던 어떤 십계명 강해설교와는 결과 격이 다르다. “복음이 힘 있는 열차라면 십계명은 그 열차가 달리는 선로입니다. 하나님의 법, 십계명에 뛰어 오르십시오! 선로에서 최고 속력으로 달리는 성도가 되십시오!”고 저자는 외친다.
김한요 목사는 본인 스스로 낀세대 이민 목회자로 자청한다. 2세 대학사역 곧 다음세대를 향한 징검다리 역할을 사명으로 여겨 세리토스(Cerritos, Ca)와 어바인(Irvine, Ca)에서 영어 사역을 키워 개척시켰는데 이는 현재 1세대 사역과 더불어 공존하는 건강한 교회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지금은 베델교회에서 전 세대가 언어장벽을 뛰어넘어 같은 본문으로 큐티하고 나누는 말씀묵상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교외적으로 기독사립학교를 세워 클레시컬 커리큘럼을 도입한 ‘Bethel Classical Academy’를 운영하면서 내일의 인재를 키우고 있다.
저서로 <세계 역사를 바꾼 교육>, <냅킨에 쓴 연애편지>, <하나님의 프로포즈>, <강한 성도, 강한 교회>, <하나님의 러브레터>, <쉼, 멈춤이 아니라 동행이다>, <일기에 남기고 싶은 시간>과 공저로 <파워기독교와 십자가의 도>, <돈인가 예수인가?>가 있다.
전체 11장. 10개 계명의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1장 서론을 제외한 각 계명의 핵심주제 단어가 각 장의 제목이다. 1장 율법의 축복. 제2장 ‘독점계약’/제3장 ‘질투’/제4장 ‘명예’/제5장 ‘축하’/제6장 ‘설득’/제7장 ‘형상’/제8장 ‘여자’/제9장 ‘공짜’/제10장 ‘증인’/제11장 ‘비교’. 십계명에 눈 밝은 독자는 제목만 읽으며 이미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듯하다. 서평자는 ‘율법의 축복’과 홀수 계명(1,3,5계명) 중심으로 서평 할 것이다.
1. 율법의 축복: “율법은 (탈선한) 기차를 선로 위에 올려놓는 것”
“너희가 이것을 안 지키면 죽-어!”, 무겁고, 의무감, 강제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10계명인가? 현대 시대에는 통하지 않는 옛 시대의 낡은 계명인가? 율법(십계명)은 자유를 제한하는가? 율법과 복음은 대치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율법의 목적’을 모르고 있음의 자기 고백이다.
당신은 ‘성경 문맹자’가 아닌가? → 율법의 목적을 알라! “율법은 축복이다”
“미국인들은 성경을 성스럽게 생각하면서 대부분 읽지 않는다.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에 나라는 성경문맹이 되어 가고 있다”(p. 25) 미국의 권위있는 통계학자 조지 갤럽(Jeorge Gall up) 의 말이다.
대다수의 미국인은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말씀으로 믿지만, 십계명을 암송조차 못한다고 한다. 다수의 신앙인은 자신은 예수의 본을 따르려 한다고 고백하지만 ‘예수님의 본’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미국인 뿐이겠는가? 오늘날 현대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의 민낯이요 자화상이다.
우리는 자꾸 질문해야 한다. ‘왜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자기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셨을까?’ 단순히 공공질서를 위해 교통법규가 존재하듯, 개인의 자유를 속박/억제/강압하는 개념으로 생각한다. 율법의 존재목적은 그 이상이다. 예수 믿고 복음의 영광을 맛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활은 결코 제한/금 긋기/강압의 개념보다 ‘자유’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십계명을 접근하는 기본자세가 중요하다. 생각의 수정이 필요하다. 스케이트 선수는 스케이트 신발을 신고 얼음위에 설 때 자유롭다. 피아니스트의 손도 건반 위에서만 자유롭다
“기차가 자유롭게 가겠다고 선로를 이탈하는 순간 탈선합니다. 기차가 선로 위에서 가장 자유롭고 빠르게 달리듯이 하나님의 말씀, 진리, 십계명을 접근하는 우리의 마음에 무엇보다 ‘생각의 수정’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말씀을 그렇게 들으셔야 합니다. 탈선한 기차를 선로 위에 다시 올려놓는 것이 뼈를 깎는 수고일 수 있지만, 그것이 진정 우리가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p.28, 필자 강조, 이 서평을 읽는 독자들도 ‘생각의 수정’이 있기를…)
김한요 목사는 율법은 ‘탈선한 기차를 선로 위에 다시 올려놓기’라 하였다. 엄청 뼈를 깎는 수고 후에 경부선을 달리는 KTX를 생각해 보라. 율법은 제한을 주고, 복음은 자유를 준다 식의 양립관계(兩立關係)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분명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출애굽 후에 주셨다’. 2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는 이 율법을 지켜 하나님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해야 출애굽의 자유를 주겠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서의 제1장의 제목이 <율법의 축복>인 것이다.
‘율법의 저주’에 익숙한 우리에게 율법은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요 선물이다. 우리는 이미 출애굽한 백성인 것이다. 그렇다. 여기서 한 가지를 질문해야 한다. “당신은 참으로 ‘출애굽’을 했나요?”
둘째는 ‘율법을 지킬 때 오는 부작용’에서 자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율법을 지킬 때 오는 부작용은 율법주의/공적주의다. ‘나는 너보다 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이 바로 그들이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하는 훈육(instruction)은 아들이 말을 잘 들으면 비로서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아들인 자에게 아버지가 사랑으로 주는 법이요 교훈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거꾸로 이해한다.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3)
어린아이는 천국의 본질을, 예수쟁이 삶의 본질을 드러낸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하다. 순수하다. 어른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그래서 서평자는 어린아이들 참으로 좋아한다. 천국의 본질은 ‘자유’이다. 계산하지 않는다. 단순하다. 주님은 우리에게 어린아이가 되라 하신다. 어린아이는 듣고 보는 대로 믿는다. “너희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 아멘
“어른이 되어 가면서 현실에 적응하고 꿈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아이들이 되라고 하십니다. 꿈을 잊지 말라 하십니다. 기독교는 지루하게 규칙만 지키면서, 규칙을 지키면 상 받고, 규칙을 어기면 벌 받고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새 꿈을 꾸십시오. 아이들이 되십시오.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자들 때문에 기죽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현실이 아니라, 다가오는 현실입니다. 꿈을 꾸고, 하나님의 법, 십계명에 [레일에] 뛰어오르십시요. 다시 선로에서 최고 속력으로 달리는 기차가 되십시오” (p.34, 필자 강조)
시내산과 변화산(해발 2,700m) → ‘새로운 시내산’, 시온산에 오르라!!
하나님은 십계명을 시내산에서 주셨다.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여호와께서 그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을 보지 못하였느니라”(신 4:11-12)
하나님께서 친히 강림하신 가운데 주신 말씀이 ‘십계명’이다. 성경은 신비롭다. 하나님의 거룩을 쏟아부으신 놀라운 사건은 신약성경에도 기록되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한 후 직후, 주님은 세 명의 으뜸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다. (마 17:1, 막 9:2, 다볼산이 아니라 혈몬산이다). 새로운 시내산이다. 모세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님의 음성만 똑똑히 선명히 들었다.
“성경에 또 하나의 산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성이 세워진 시온산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그 거룩하심이 쏟아부어진 현장이 사도행전에 다시 나옵니다. 바로 예루살렘의 한 가정집이었습니다. 그날은 오순절이었습니다. 바로 유월절 50일이 되는 날, 즉 모세가 시내산에서 정확하게 율법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강한 바람과 혀가 갈라지는 것 같은 불이 내려옵니다. 시내산의 재현입니다.” (p.36. 매 주일 우리는 ‘새 시온산’에서 말씀을 듣는다)
성경 읽을 때 우리는 통시적(通時的)으로 보아야 한다. 구약을 읽으며 신약을 동시에 읽는 자가 제대로 성경을 보는 자이다. 십계명을 읽고 암송할 때도 역시 그러하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았다. 하나님은 그의 입술을 숯불로 정결케 해 주셨다. 지금도 동일한 성령께서 성도의 입을 정결케 하신다. 부정적인 입술(말)은 불세례 받아야 한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서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 14:21)
2. 제1계명: ‘독점계약’ →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 → ‘걸어 다니는 십계명’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출 20:1-3)
‘나는 너를, 너는 나 외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3절)
“제1계명은 모든 계명의 근본이요, 뿌리요,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오는 모든 하나님의 규례는 제1계명에서 흘러나왔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첫째 계명은 중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p.48. 십계명은 하나님의 손(the finger of God)으로 친히 기록한 말씀이다)
십계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핵심(심장)이 되는 말씀이며 하나님의 성품 안으로 초청하는 말씀이다. 그중에서 제1계명은 근본/뿌리/핵심 중의 중핵(中核)이다. 다른 9계명은 제1계명에서 흘러나왔다.
독점은 사랑의 독점이다. → 예배의 독점이다 → 예배의 독점은 아름다움이다.
하나님은 ‘나 외에는’라고 말씀하신다. 속 좁은 남편에게 소박맞은 아내의 질투인가? 크신 하나님이 너무 쩨쩨하지 않는가? 아무리 허물 많은 남편일지라도 정상적인 아내는 그를 독점하게 되어있다.
“하나님은 ‘나 외에’라고 말씀하시면서 정확하게 부부 사이에만 가능한 독점의 관계를 전제로 이 계명을 주셨다는 것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독점의 관계를 예배의 독점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부부의 관계를 뛰어넘는 예배의 독점입니다.” (p.50, 필자 강조)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예배는 초지일관(undivided heart) 주님께만 집중함(undivided heart)이요 우리의 온전하고 전적인 마음(whole and undivided heart)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달러/돈이 우상이요 신이다. 그래서 미화달러에 쓰인 ‘In God We Trust’를 요즘에는 “In this god, we trust’로 읽는다고 한다.
‘우리는 새언약의 일꾼’(고후3:6), 우리는 모두 “걸어다니는 십계명이다.”
우리 예수쟁이는 이미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 마음에 새 언약을 주셨다. 새 포주는 새 부대에 담듯이 새 마음/새 영/새로운 부드러운 마음을 주셨다. 예수님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는 “우리를 독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께 독점 당하는 기쁨과 감격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p.54) 아멘!
3. 제3계명: 명예(名譽) “이 계명은 우리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는 계명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출 20:7)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망령되이(in vain, misuse) 사용하지 말라. 하나님은 모세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I AM WHO I AM. 하나님의 이름이 ‘I AM’은 현재형 같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는’(I WAS, I AM, I WILL BE)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신중히 지키라는 뜻이다. 롯의 사위들(창 19:14), 나답과 아비후(레 10:1-2)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다. 저들은 모두 불로 멸망하였다.
- 공부(숙제) 못한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변명거리로 삼지 말아야 한다. 김한요 목사는 한인2세 중심으로 대학생 사역 때, 성적표 제출을 제자훈련의 필수사항으로 하였다.
- 하나님의 이름을 이기적인 목적에 쓰지 말라는 명령이다. 미국교회는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 9:25)를 노예제도를 옹호하였다.
이 세상은 이름내기 경쟁사회다. 멸망과 심판이 예정된 바벨탑의 이름내기(창 11:4a)다. “우리는 왕 중의 왕이신 그 이름 예수의 이름, 구원의 이름으로 계약이 체결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 이름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그 이름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p.90, 필자 강조)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대하 7:14)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제3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을 금합니다. 이 계명은 우리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는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을 신중하게 지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변명거리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 자기 일을 더 성실히 합니다. 욕설과 함께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p.95, 필자 강조)
4. 제5계명: ‘설득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법은 왜 만들었을까? 진화론자들은 실용적인 필요 때문이라고 한다. 제5계명도 그럴까요? “신앙적인 가치의 연계성과 대물림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p.119) 그래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옳기 때문에 주어진 명령이다.
‘왜 부모 공경이 옳은가’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2가지 이유이다.
첫째는 부모를 통해 신앙교육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신앙교육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주셨다. 결코 교회 주일학교 교사가 아니다. 신명기 6장 6절에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하신 후에 어디서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집에 앉았을 때/길 갈 때/누워 있을 때/일어날 때(7절) 전천후(全天候) 모든 환경에서 항상 말씀을 강론할 것을 말씀하셨다. 자녀(신앙) 교육은 곧 부모 교육임을 확인한다. 성경에서 “내 아들아”(잠1:7, 8; 3:1, 2), “참 아들”(딤전 1:2, 딛1:4)은 부모가 자녀의 신앙교육자 임을 확인한다.
둘째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호기심이 많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물을 때”(신 6:20), 바로 그때가 교육의 기회로 “우리를 애굽(노예)에서 인도하여 내셨음”(21절)을 가르치며 하나님을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24절)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참 자유를 누리도록 하신 것이다.
“약속 있는 첫 계명”: “…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엡 6:3)“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b)
다른 십계명은 순종 아니면 죽는(do or die) 무서운 분위기다. 그러나 제5계명은 ‘설득’하신다는 느낌이다.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전제에서 제5계명이 나온 것이다. 부모 공경(kabed)은 부모님의 권위를 ‘무겁게 / 실감있게’ 여기라는 뜻이다. 이 땅에서 잘 되는 복, 장수하는 복을 누리는 자들은 대개 효도하는 집안임을 확인한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이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잠 3:1, 16)
“부모 공경의 계명은 이것이 주 안에서 옳기 때문에 주어진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신앙교육을 맡기셨습니다. 부모에게는 자녀를 복음으로 낳고 믿음으로 양육할 책임이 있기에 자녀는 부모의 훈계를 들으며 그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이기에 우리는 부모의 권위를 무겁게 여겨야 합니다”(p.137. 필자 강조)
나가는 말(결론)
“이 책은 십계명 강해를 넘어, 각 계명마다 들어있는 하나님의 심장 소리를 듣게 한다”
오늘날은 그야말로 기준이 사라진 시대이다. 기준이 없기에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한다. 권위가 없다. 집에도 사회에도 어른이 안 보인다. 기준을 회복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각 분야에 그 ‘나름의 십계명’이 많다. 모든 기준의 정수는 십계명이다.
풍부한 예화와 가장 모범적/전통적 깔끔한 십계명 강해서다. 아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크고도 놀라운 긍휼과 사랑을 받았는지를 깨닫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 이민 교회에서 설교에 재능이 많은 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들리는 설교’를 하는 자이다. 예증을 들어 쉽게 설명하는 문장력, 술술 읽히는 가독성은 금상첨화(錦上添花)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이 십계명이 오늘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지혜요, 기룩한 인생을 위한 불루프린트임을 다시금 배우기를 원합니다. 천국 곡간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지혜를 꺼내 오기 원하는 모든 분께 이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그래서 거룩이 필요한 이 시대에 인생의 목적이요, 결혼의 목적인 거룩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김양재, 우리들교회 담임목사, 추천사)
“이 책은 십계명의 강해를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도록 인도해 줍니다. 나아가 계명마다 들어있는 하나님의 심장소리를 듣게 하고 모든 말씀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계명 앞에 여전히 허물로 얼룩진 우리 모습을 발견하지만, 한없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사랑에 십계명은 무섭거나 무거운 율법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노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보다 더 세차게 삶을 변화시키고 주님을 더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는 십계명에 대한 책을 찾아보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류응렬 와신톤중앙장로교회 담임)
이 책의 저자 김한요 목사는 “박물관에 진열된 것 같은 십계명의 두 돌판을 성도들의 집에 걸어놓게 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하였다. 나부터 그렇게 하고 싶다. 본 서평을 마무리하며 모든 독자들께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당장, 유튜브에 들어가 ‘김한요 목사’ 설교를 듣기를…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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