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싸움은 우리의 능력대로만 싸우는 게 절대로 아니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은...하나님의 개입 |개입의 은혜 첫 번째, 완벽하지 않은 작전이 성공하게 하시는 은혜 |개입의 은혜 두 번째,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시는 대속의 은혜
◆ 성경본문 : 사무엘하 16장 15절~19절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이른지라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갈 때에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하니 압살롬이 후새에게 이르되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이다 또 내가 이제 누구를 섬기리이까 그의 아들이 아니니이까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기리이다 하니라”
◆ 설교제목 : 하나님의 개입
스포츠 경기를 보면 변수가 많은 종목이 있고 변수가 없는 종목이 있습니다. 최소한 변수를 아주 최소화시켜서 선수의 실력으로만 승부하게 하는 경기들을 실내경기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내경기 가운데 요즘 혹시 이런 경기 보시는 분 계신지 모르겠는데요. UFC라는 게 있습니다. 이거는 남자 선수, 여자 선수 한 명씩 나와서 서로 겨루는 경기인데 갖고 있는 모든 다양한 기술들을 다 사용해서 펀치를 날리기도 하지만 잡아서 매치기도 하고 누르기도 하고 아주 격렬한 게임입니다.
이 게임이 옥타곤이라고 부르는 팔각형의 링 안에서 두 사람만 딱 세워놓고 경기를 시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누가 더 잘 싸우는지를 보는 경기입니다. 여기는 변명할 게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변수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그냥 실력대로 싸워야 하는 게임입니다. 날씨도 상관이 없고 장소도 큰 상관이 없습니다. 오로지 선수들의 기량만 나타납니다.
하지만 변수가 많은 스포츠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골프 같은 스포츠는 변수가 많습니다. 아침에 출발한 선수와 오후에 출발한 선수가 전혀 다른 상황에서 게임을 하게 됩니다. 각각 다른 잔디 상태에서 게임을 합니다. 날씨도 계속 바뀝니다. 바람이 불었다가 안 불었다가 햇볕이 낫다가 비가 났다가 별의별 상황들을 다 다르게 맞게 되고, 각양 각종의 변수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선수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게임을 하고 어떤 선수는 따뜻한 햇빛을 받으면서 같은 경기장 안에서 다른 게임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편의도 봐주지 않고 마지막에는 오로지 자기가 낸 점수로 결정이 됩니다.
1. 우리의 싸움은 우리의 능력대로만 싸우는 게 절대로 아니다
우리의 싸움은 어떻습니까? 우리 인생의 경기, 우리의 싸움은 변수가 많습니까 변수가 적습니까? 우리의 경기는 우리의 싸움은 아주 다양한 변수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은 공정한 스포츠에는 별로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스포츠는 열심히 준비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메달을 따야 그게 정정당당한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께서 스포츠는 많이 개입하지 않으세요.
그러니까 여러분 친구랑 탁구치는데 너무 기도하고 탁구치지 않으셔도 돼요. 친구랑 어디 가서 경기를 하시면 그냥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하려고 해야지 너무 하나님을 졸라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냥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세요. 물론 기도하실 때는 하시지만 대부분은 노력한 사람이 메달을 따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싸움은 조금 다릅니다. 우리의 싸움은 우리의 능력대로만 싸우는 게 절대로 아닙니다. 다윗과 골리앗 능력대로만 싸웠으면 골리앗이 100번은 더 이겨야 하는 싸움입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그 싸움에 개입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일하여 주시고 누군가를 보내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일들을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행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갖고있는 가장 좋은 가장 놀라운 가장 아름답고 복된 변수입니다.
2. 질 수밖에 없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개입
제가 성경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하나님은 우리의 싸움에 개입하십니다. 제가 왜 이렇게 담대하게 여러분께 말씀을 드릴 수 있냐면 오늘 말씀의 상황이 그렇고 다윗의 상황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질 수밖에 없는 싸움, 다윗이 압살롬에게 이미 꺾여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이 싸움에 개입해 주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 모든 상황으로는 다윗이 압살롬을 다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을 차지했습니다. 다윗은 도망가기 급급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다윗과 지금 함께할 수 있는 병사들이 몇 명이 되겠습니다. 물론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모으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고 지금은 도망가는 처지이고 나이 먹은 왕이 과연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됩니까.
우리는 늘 확률의 게임을 듣습니다. 병에 걸리면 암에 걸리면 꼭 의사들이 몇 퍼센트 생존율을 말해줍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몇 퍼센트 생존율이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이길 수 없는 게임들, 이길 수 없는 싸움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가 가진 것으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것들이 많지만 그 싸움에 하나님이 개입하심을 기도하셔야 됩니다. 그 전쟁의 하나님의 손이 임하시기를 기도하셔야 되고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를 바래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후새를 예루살렘에 보내주시고 또한 압살롬의 신임을 얻게 하시고 아히도벨의 모략을 무력화시키셔서 나중에 다윗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이거는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인 것 같고 각 개인의 역량대로 일어난 일인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이 개입하셨습니까 안 하셨습니까? 저는 저의 인생에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오셔서 도와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제가 져야 할 싸움들이 천 번이고 만 번이었습니다.
제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길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 하나님이 개입해 주셨습니다. 블레셋과의 싸움,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셨습니다. 사울과의 싸움에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압살롬과의 싸움에도 개입해 주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죠. 아까 스포츠 얘기할 때 하나님께서 공평한 게임 정의가 공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게임에는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는데 근데 이걸 아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선한 사람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선한 사람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약하지만 도와주시고 무너진 것까지만 일으켜주시고 일대 백의 싸움이지만 편을 들어주셔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사람을 보내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지혜와 명철을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은혜입니다.
3. 개입의 은혜 첫 번째, 완벽하지 않은 작전이 성공하게 하시는 은혜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개입하셨다는 뜻이에요. 은혜라는 것은 내 삶의 은혜가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개입해 주셨다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우리 삶에 개입해 주셨습니다.
베데스다 못가에 있던 38년된 병자는 절대로 자기 힘으로는 못가에 내려갈 수 없는 사람 꼴등이었습니다. 게임으로 보자면 절대로 메달을 딸 수 없는 사람입니다. 늘 출발하면 꼴등입니다. 남들이 다 베데스다 못가로 천사가 물을 동할 때 다 뛰어 내려가지만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이 38년 동안이나 맨날 늦게 도착한 사람이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운동장에 나타나신 거예요. 그 경기장에 나타나신 것. 맨날 꼴등하는 38년 된 병자에게 가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어보셨어요. 우리는 내가 열심히 살아야만 일등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열심히 뛰어야만 일등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뛰지 못하면 나는 저 메달을 절대로 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께서 그 운동장에 나타나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이기고자 하느냐?’ ‘네가 승리하고자 하느냐’ 물어보십니다. 여러분, 그렇게 물어보실 때 ‘예. 주님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셔야 합니다. 고백하셔요.
예수님께서 가장 늦게 뛰고 있는 38년 된 병자를 부르셔서 그걸 고쳐주셨습니다. 그게 개입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삶에 오시죠.
개입의 은혜는 여러 가지 은혜가 있지만 오늘 우리가 발견하는 첫 번째 은혜는 완벽하지 않은 작전이 성공하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작전이 성공하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해 주시면 우리의 결코 완벽하지 않은 삶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후새가 압살롬을 속이고 압살롬을 설득했습니다. 친구인 다윗을 버리고 예루살렘에 와서 아들인 그렇지만 지금은 왕인 압살롬에게 ‘내가 충성하고 섬기겠습니다’라는 말을 압살롬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가 그냥 말씀을 읽으면 그런가 보다 하지만 이거를 거꾸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거를 믿기가 쉽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어제까지 친구로 지냈던 사람이 나와 함께 하겠다고 적인 나와 함께 하겠다고 내가 다 도와주겠다고 하면 금방 믿어질 수 있습니까?
신비하게도 압살롬이 ‘그럴 수 있지’라고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다윗의 가까운 친구였고 다윗의 모략가였던 후새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후새가 충성을 표하는 이런 말 저런 말 다 했습니다. 이거를 다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여기서부터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라고 분명하게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거예요. 압살롬이 후새를 받아들이도록 하나님께서 움직여주셨고 후새 말에 개입해 주시는 겁니다.
후새가 얼마나 잘 속였을까요? 완벽하게 속여서 압살롬이 속은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압살롬이 속도록 도와주셔서 속은 것이겠습니까?
우리의 작전이 완벽해야 우리의 삶이 잘 되고 복을 받고 승리할까요? 여러분들이 완벽하게 연기하고 완벽하게 계획하고 아이들의 삶을 착착 맞춰서 대학교 들어가는 것까지 시집 장가가는 것까지 여러분이 완벽하게 짜주면 그들의 인생이 잘 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플랜 우리의 인생의 경영이 완벽해야 우리가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몇 살에 뭐 하고 자격증을 어떻게 따고 올해는 무슨 일을 하고 이런 것들이 다 이루어져야만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싸움에 이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작전이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계획이 완벽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우리 인생이 잘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도와주셔야 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그 연기를 도와주셔야 하고 완벽하지 않은 그 길을 도와주셔야 하고 완벽하지 않은 우리 삶에 찾아와 주셔야 우리가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죠.
성경에서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전도서 9장 1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작전을 짜도 아무리 몸이 건강해도 아무리 지혜와 명철이 많아도 우리가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오늘도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의 삶에 있었던 것은 완벽한 작전이 아닙니다. 다윗의 삶에 있었던 것이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이 그의 삶을 도와주었고 승리하게 하고 그리고 압살롬의 전쟁에서도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은혜를 허락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후새가 연기를 잘하면 얼마나 잘했겠습니까? 이거 눈치채려면 금방 눈치채서 바로 목을 칠 수 있는 일입니다. ‘너 그따위 수작 부리지 말아라. 난 너 필요 없다. 아히도벨이 있다’
여러분 나중에 16장 마지막 절을 보면 아히도벨이 얼마나 위대했던 사람임을 보게 됩니다. 한번 보실까요? ‘그때의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는 말씀과 같은 것이다.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
다음 주는 3월 특별새벽집회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드리지 못하는데 그다음 주에 이 말씀을 드리려고 생각 중입니다. 아히도벨이 얼마나 전략이 뛰어났으면 뭐라고 표현하냐면 ‘하나님의 말씀과 같았다’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후새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당연히 뛰어난 사람이겠지만 이 정도로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압살롬은 이미 아히도벨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이 후새를 받아들인 것은 다윗이 완벽한 작전을 짰기 때문이 아니라 이 어설픈 일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설퍼도 기도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겁니다. 완벽해 보여도 기도하지 않으면 교만해서 나가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계획이 좀 어설퍼 보여도, 내가 이래서 뭘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대충 계획해서 살 수 있을까? 아닙니다. 그 어설픈 계획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곳에 함께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4. 개입의 은혜 두 번째,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시는 대속의 은혜
두 번째는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시는 은혜입니다. 보통 두 번째하면 세 번째도 있는 걸로 생각하시겠지만 오늘은 두 번째가 끝입니다.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심이 은혜입니다.
후새는 다윗 대신 예루살렘성에 남았고 다시 성을 되찾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 전쟁을 보십시오. 이 싸움을 보면 다윗이 다 잘해서 승리한 싸움이 아닙니다. 다윗이 지혜를 갖고 명철을 갖고 다윗의 힘으로 승리한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을 붙여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승리하게 하신 싸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대신 싸워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쟁이 바로 다윗과 압살롬의 전쟁입니다.
살다 보면 민망한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그 민망한 장면 중의 하나가 부모님들이 아이들 싸움에 끼어드는 겁니다. 여러분 아시죠? 놀이터에서 아이들끼리 싸움이 붙었는데 그다음 부모가 하나 끼어들어 아이들한테 ‘니가 잘못했잖아’ 그러니까 저 아파트 위에서 바라보던 엄마가 그거 보고 뛰어 내려와서 둘이 머리끄댕이 잡고 있으면 진짜 보는 사람들은 민망하죠. 그 부모님들은 그럴만해요. 왜냐하면 내 아이가 당하는 게 속상한 거죠. 그런데 부모들이 원래 싸움에 끼어들면 안 되죠.
자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싸움에 끼어들어 주십니다. 가만히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절대로 가만히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당하는 것을 하나님은 절대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싸움에 기꺼이 뛰어들어 주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십니다. 그래서 연약한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골리앗 이기게 하시는 것이고 다윗이 사울에게 미움을 받고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와주시는 거고 대적인 블레셋의 거대한 군대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와주시고 아들에게 버림받고 반역의 아픔 속에 도망가는 다윗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는 거죠.
여러분 우리의 적이 크고 강할 때 우리의 싸움이 어려울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은 대속적인 개념이 강하죠. 대신입니다. 내가 의로운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의롭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거죠. 주님께서 우리 대신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대신 얻는 은혜는 성경의 기본적인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싸워주시고 우리 죄 많은 우리를 위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대신하신 이 모든 것들이 바로 하나님이 어떠한 일을 하시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상황 우리의 작전 우리의 능력 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완벽한 분 계십니까? 완벽한 상황에 완벽한 능력에 완벽한 작전을 가지고 계신 분 계십니까? 그런 분들은 더 기도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후새를 보내주시고 아히도벨의 모략을 무너뜨려 주시고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개입해 주셔서 승리의 길로 틀어주십니다.
5. 성도는 기가막힌 경험들이 있어야 한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운동장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적들과 싸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가 막히게 도와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성도는 기가 막힌 경험들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이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후새에 어색한 연기에도 모든 자리를 굳게 잡을 수 있었고 의심을 피할 수 있었고, 마침내 압살롬의 마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도 누군가 저 운동장에서 연약하여서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이 되어야 줄로 믿습니다. ‘저 사람은 이길 수 없어’ ‘저 사람은 삶 가운데 승리할 수 없어’ 그럴 때 우리는 그들의 편이 되어주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함께 싸울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한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 가운데 전해질 줄로 믿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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